앙상한 나뭇가지 적막하던 새둥지에 봄비가 스민다. 뽀오얀 안개 속에서 길을 찾던 새들 날아오고

오싹한 등짝을 드러낸 구학능선은 풋알진 울타리콩 모양 쭈그러져 밉상이나 한때는 계절을 팔고 사람을 업고 청년의 기색으

마고할미께서 느닷없이 짚고 있던 주장자 내리치시며 이놈아, 그만 일어나 막걸리 반 되만 받아오너라, 일갈하셨다

덤불숲 헤집는 꿩 쉰 목소리 허공 가르고 아름다운 날개깃은 치악산에 뜬 무지개 댕그랑 보은의 종소리 아슴하게 들린다.

고속도로를 저속으로 달린다. 길마다 눈밭이다. 눈은 계속 내리고, 꽁꽁 얼어버린 새하얀 세상 예측할 수 없는 앞길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달려간다. 가다보면 막힐 수도 있는 길 아닌 길.

바다가 오늘 새벽에 해 알을 하나 쑥 낳았어요.바다는 해 알을 품고 까서 환한 빛 새를 하늘에 날려 보냈어요.

해가 저문다. 문막 공단을 가로질러 흥원창을 지나던 해가 빨갛게 도장밥을 찍어 삼십만 시민이 그린 삼십만 장의 한해 그림에 낙관을 친다. 허술하면 허술한 대로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오늘의 그림은 오늘이 재단하게 하고 다시 받아들 백지위에 그릴내일의

저마다 명패차고나란히 손짓하는네온불 반짝이며온 몸으로 과시하는숙습宿習의 욕망을 향한불나비 행진이다.

누덕누덕 기워진 노을이 서산을 덮을 때가 되어도 자유시장 앞 노점 할머니들의 하루살이는 쉽게 떨이가 되지 못했다. 누군가의 하루살이와 바꾸기 위해 가져 온 호박 몇 덩이와 산나물 몇 묶음을 몇 번이나 모으고 가르며 셈을 해 보아도늘 내일은 빚으로 남겨

입 소문에 발 도장 찍은 운동장 해장국집 따끈한 국물 속에 인심도 듬뿍 듬뿍 덤으로 주시는 친절 입안 가득 행복하다

오늘도 민생고 날을 세우며 조용한 골목길 적막을 깨우며 젓갈 파는 사람 그 향기에 숨죽은 50대 남자의 얼굴은 젓갈처럼 발효되어 삭아보였지만 삶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애창곡 있을 때 잘해 도라지꽃 벌어지듯달싹이는 어머니의 입술 있을 때 잘해 없어 봐라 말 한마디 할 수 있나 구순 넘은 어머니의 잠꼬대

종종 엉뚱한 것에 홀리기도 하고 어제와 다름없이 눈 오면 아이가 되고 길거리에서 아줌마라 부르면 외면하고 싶은데 나와 아주 먼 이야기인 줄 알았던 그 나이가 되었다

남들이 다 싫어하는 길바닥이라도 좋아요.이 사람 저 사람 사람 구경하며 살지요.모르고 밟으시면 그냥 밟혀드리지요.그래도 환한 웃음 늘 잊지 않을래요. 어쩌다 누군가 날 보고 웃으면 눈물나도록 고마운 마음을 홀씨로 보내드리지요.

깨를 볶을 듯 따가운 햇살에도 온 몸에 넘치는 윤기,비단 같은 세월만 지나온 것은 아니다 뿌리를 덮어주던 땅 제 살결 트는 메마른 세월도 있었고 땅 속 몽땅 헤집고 파고드는 회오리바람이 상흔을 남기며 지나갔어도 대지 속에서는 새살이 돋는다

서랍을 정리하다 하도롱빛 봉투보니가슴이 통게통게 그리운 어버지에미야, 바다(받아) 보아라 두 눈을 적시네넘실넘실 일렁이는 물결에 순응하며바다 위를 감실감실 떠가는 돛단배갑자기 파도의 전율에 온몸이 휘감긴

누군가에 밭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 생명을 키워 내는 것 땅을 밀고 나온 생명이 저 스스로 꽃이 되어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그리움이 밤을 두려워하거든, 차라리 졸다가 그냥 지나칠지도 모를 완행열차를 타라 초라한 역(驛)을 버리고 헐떡거리면서 아침까지 달려가 꺼지지 않을 밤 지켜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