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선규제봉이 파손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주의한 운전보다 불법으로 차선을 변경하려는 양심불량 운전자들 때문이다. 사진은 단계동 이화마을 지하차도 입구. 한 차량이 파손된 차선규제봉 사이로 차선을 변경하고 있다.

도로 위 중앙선에 설치된 붉은색 기둥을 '차선규제봉'이라고 한다. 차량 불법유턴과 중앙선 침범 등을 막기 위해 설치한 교통시설물로, 교통사고 예방에 효과적이다. 그런데 차선규제봉이 일부 운전자들에 의해 파손돼 운전자와 보행자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불필요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운전자들의 성급한 유턴과 방향전환 등으로 인해 차선규제봉이 파손되는 실정인데 이 숫자가 엄청나다. 원주시 교통행정과에 따르면 원주시에 설치된 차선규제봉은 7천여개이며, 이중 연간 파손되는 차선규제봉은 2천여개에 달한다.

차선규제봉 파손은 예산낭비로 이어진다.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차선규제봉은 개당 1만3천~1만5천원이다. 원주시는 연간 2천여개를 새로 설치하는데 최대 3천만원을 투입하고 있다.

원주시 교통행정과 관계자는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파손이 반복돼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며 "차선규제봉이 파손되지 않고 원상태로 유지된다면 예산을 절감할 수 있지만 이 같은 행위가 끊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역 내에서 차선규제봉을 파손시킨 것도 모자라 이를 악용하는 일이 발생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단계동 지하차도는 단계동 이화마을 앞과 정부합동청사 앞을 관통하는데 지하차도 2차로와 오르막 차로 2차로 사이엔 차선규제봉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이화마을에서 나온 차량들이 파손된 차선규제봉 사이로 곡예운전을 하면서 지하차도로 진입하고 있다.

이화마을에서 진출한 차량은 지하차도가 아닌 우측 오르막차로로 주행해야 한다. 차량들이 넘나드는 통로엔 차선규제봉 3개가 부서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고, 불법 진입하는 차량이 줄을 이었다. 단계동 주민 A 씨는 "지하차도로 이동하는 차량들의 속도가 빠른 편이어서 차선규제봉 사이로 차량이 끼어들면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에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안전보행시스템의 차선규제봉이 빈번하게 파손돼 논란이 일고 있다. 횡단보도에는 적색 신호 시 감지센서를 통해 보행자의 출입을 막는 차단기가 설치돼 있고, 중앙선에는 LED조명이 장착된 차선규제봉이 녹색, 황색, 적색 신호로 바뀌면서 차량 진출입을 안내한다.

원주시는 2012년부터 단구초, 동화초, 명륜초, 만대초, 명륜초 등 9개소에 각각 1억5천여만원을 들여 시스템을 설치했다. 그러나 일부 운전자들이 LED차선규제봉을 파손시켜 학생들과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일반 차선규제봉보다 고가여서 보수하는데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최근에는 명륜초교 앞 안전보행시스템의 LED차선규제봉이 모두 파손돼 주민들의 원성을 샀다. 강한 충격에 의해 차선규제봉이 뿌리째 뽑히고 전선이 드러났다. 개운동 한 주민은 "명륜초교 학생들이 마음 놓고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설이지만 몰지각한 이들에 의해 파손됐다"며 "학생들이 교통사고를 당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원주시는 지난주 차선규제봉을 교체했다. 원주시 관계자는 "차선규제봉이 기능을 상실하면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난폭운전과 부주의 운전으로 인해 타인이 위협받을 수 있는 만큼 운전자들이 주의를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처럼 교통시설물 파손행위가 만연하지만 처벌강도가 낮아 관리당국으로선 난감한 입장이다. 운전자가 교통시설물을 파손시킬 경우 원상복구 비용 정도만 부과할 뿐 과태료 처분과 같은 처벌기준이 전무한 실정이다.

이마저도 경찰에 적발될 경우만 복구비용 청구가 가능한데 적발하기란 하늘에 별따기 수준. 원주시가 한 해 원상복구 비용을 청구한 건수는 50여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