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가 지역 전통산업을 계승하기 위해 추진한 닥나무 묘목 지원사업이 구체적인 육성방안 없이 추진돼 예산낭비 논란이 일고 있다.

원주시는 옻·한지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명품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2008년 옻·한지 산업육성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정하고 이듬해부터 지원사업을 실시했다.

산업화로 인해 한지산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이를 유지하기 위해 닥나무 묘목 지원사업 등을 실시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2만5천여본의 묘목이 지원됐지만 2013년 이전에 지원된 묘목은 대부분 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주시닥나무생산자협동조합이 지난해 묘목 활착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살아남은 것은 1만3천본에 불과했다.

한 본당 약 2천원씩 지원돼 그동안 모두 2억5천여만원의 세금이 투입됐지만 2천800여만원 어치만 살아남은 것.

특히 2009년에는 호저면 주산리와 옥산리, 고산리에 3만3천여 본이 지원됐으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묘목은 40여본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상당수 닥나무 생산지는 대부분 논·밭으로 활용되고 있다.

닥나무가 사라진 이유는 체계화된 지원이나 관리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권영익 원주시의원은 "횡성한우가 전국적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정에 맞게 육성했기 때문"이라며 "원주시는 아무 땅에나 심어 방치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원주시는 대부분 묘목을 호저면에 심었다. 호저면은 저전동면(楮田洞面)이라 불릴 정도로 예로부터 닥나무 생산 적지로 명성이 높았고, 원주시는 시유지에 대규모로 닥나무를 식재했다.

닥나무는 물빠짐이 좋아야 잘 크는데 일부 땅은 너무 질어 묘목이 썩거나 토양이 맞지 않아 생육이 어려웠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이에 대해 원주시 관계자는 "닥나무 묘목을 원주에서는 구할 수 없어 남쪽지방에서 묘목을 공수해 심었는데 기후나 토양에 잘 맞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주민들의 사기저하도 실패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묘목이 무료로 지원됐고 닥나무에 관심이 있었던 주민도 많았지만 제대로 크지 않은 데다 소득면에서도 매력적인 것이 아니어서 상당수 주민들이 손을 놓고 말았다.

주민 A 씨는 "노인들이 애지중지 키워도 마땅한 판로가 없었다"며 "호저면 새마을회에서 일 년에 두어 번 풀베기 사업을 실시했지만 잡초가 키만큼 자라도 주민이나 원주시 모두 신경쓰지 않았다"고 전했다.

▲ 지난 2009년 원주시에서 닥나무를 심었던 호저면 주산리 현장. 닥나무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방치돼 있다.

2천만원 짜리 기계도 방치

원주시는 닥나무 묘목뿐만 아니라 매년 1천800만원을 들여 비료를 지원하고 있다. 닥나무 생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인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활착률이 10%도 안됐던 점을 고려하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 없었다.

또한 원주시는 2천만원을 투입, 닥나무 껍질 벗기는 기계를 구입해 호저면 고산리에 설치했다. 하지만 이 기계는 닥나무가 공급되지 않아 당초 목적으로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주민 B 씨는 "2010년 경 기계를 구입한 이후 여태까지 닥나무에 사용하는 것을 못봤다"며 "한지양잠클러스터에서 옻나무 껍질 벗기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3차 산업과 연계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3~2014년 지원된 닥나무는 활착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주닥나무생산자협동조합은 2013년 8천200본 중 3천본 가량, 지난해는 6천700본 중 6천본 가량이 활착됐다고 밝혔다.

협동조합이 꾸준히 생육관리를 하고 판로도 확보해 활착률이 높았다는 것. 협동조합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묘목을 지원받기 위해 줄을 설 정도로 수요가 높다"며 "충분한 관리를 통해 판로를 넓힐 경우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닥나무 수요를 단순 한지 생산으로 국한하지 말고 2·3차 산업용품으로 쓰임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권영익 시의원은 "한지가 세계적으로 보습력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기저귀나 화장용품 목적으로 쓰임을 넓힐 필요가 있다"며 "한지 산업만으로 생존이 힘들다면 발상의 전환을 꾀해 전통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부 닥나무는 토요협동조합에서 전통 떡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고, 행구동 황후초콜릿에서는 초콜릿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