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회에서 농촌지역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의 통폐합 의견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진료소를 이용하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니 인건비와 유지비 절감을 위해 통폐합하자는 것이다.

이런 의견을 내 놓은 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 소속 시의원들에게 과연 현장을 방문하여 실사를 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혹여, 시가지에 즐비한 병의원 중에서 한 두 곳을 퇴출시키는 정도로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농촌지역에 있는 보건진료소는 그렇게 주판알 튕기듯이 손쉽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시의원들께서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보건진료소는 1981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역에서 1차의료를 담당하는 곳이다. 보건진료소에는 의사가 배치돼 있지 않고, 보건진료원이 상주하며 외상 등 일반적인 치료와 응급처치, 예방주사 등 경미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예방의학 측면에서 건강을 소재로 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필자는 농촌지역인 호저면에 살다보니 보건지소와 진료소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평소 필자는 '보건진료소 소장님들이 웬만한 성직자보다 훨씬 더 낫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농촌지역은 이동권에 큰 제약을 받는 곳이다. 개인 이동수단이 발달했지만, 노인들은 마땅한 이동수단이 없다. 유일한 이동수단인 공용버스도 하루에 서너 번 밖에 운행을 안 하기 때문에 시내에 있는 병의원에 다녀오려면 하루를 꼬박 보내게 된다. 이런 이유로 웬만한 증상으로는 병의원을 찾지 않고 자연적으로 낫기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홀로 사시는 한 할머니는 비닐하우스에 올라갔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발뒤꿈치를 심하게 베었는데도 비위생적인 비닐로 상처를 감싼 채 며칠을 지내고 계셨다. 병원에 모시고 가서 상처를 꿰매었는데, 후속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녀오는 것이 힘들어 집에서 홀로 실밥을 뽑았다고 하셨다. 병원에 다녀오기 힘들면 보건진료소에라도 가시라고 안내해드렸고, 그래서 기본적인 상처소독을 받을 수 있었다.

이동권에 제약을 받는 농촌지역 노인들에게 보건진료소는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는 등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고마운 곳이다. 만약 보건진료소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진료를 포기하는 인구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둘째로 보건진료소는 마을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주는 곳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병의원에 비해 보건진료소는 특정 지역을 담당하기 때문에 그 마을 사람들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용이하다. 누구네 집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농촌지역 의료 뿐 아니라 문화와 복지 전달체계로서도 훌륭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일례로 '나눔의집'에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호저면 어르신들에게 '무료 반찬 나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반찬 나눔이 필요한 어르신을 파악하는데 진료소가 큰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반찬을 배달하는 봉사자로 진료원(진료소 소장)이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역명물인 호저춤을 발전시킨 이도 다름 아닌 진료소 소장이었다. 타지역도 진료소를 중심으로 건강문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펼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단순하게 보건진료소에서 진료를 받은 숫자만을 가지고 그 존폐를 논할 수 없는 이유다. 변화된 환경에서 보건진료소는 그 기능이 다변화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지역주민들과의 관계망은 어떤 기관·단체보다 훌륭하다. 굳이 보건진료소 존폐를 논하고자 한다면, 진료실적과 더불어 건강·문화·복지·보건활동·각종연계망·주민만족도 등 다양한 활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정부에서도 2011년 보건진료소 설치기준을 완화하였으며, 타지역 시군구는 보건진료소를 추가로 설치하는데 적극적이다. 농촌지역 고령화가 더욱 심각해지고, 인구수가 줄어들수록 역설적으로 보건진료소 필요성은 더 증가한다.

무너져가는 농촌지역을 떠받치고 있는 주요한 기둥이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보건진료원들의 헌신적인 섬김이 있었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