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탈북한 뒤 원주에서 음식점을 차린 북한이탈주민 이순복(49·금강산 막국수 대표) 씨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 있다.

단계동 이화마을에서 막국수집을 운영 중인 이 씨, 가슴 아픈 일들을 뒤로하고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겪은 이야기들이 가슴 한 켠을 찡하게 한다. 한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 사이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북측 강원도 고성군에서 살던 이 씨는 지난 2007년 중국과 몽골을 거쳐 한국땅을 밟았다. 과정은 혹독했다. 열차 기관사에게 웃돈을 건네주고 함경북도 무산에 도착, 뒤이어 브로커를 통해 석탄운반차량을 타고 은밀히 이동해 두만강 근처 산속에 숨어 있다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 씨는 이보다 앞선 지난 1998년과 2001년 두 차례 북한을 벗어났다가 고향 고성으로 강제 송환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이 기간 중에 태어난 아들은 이 씨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

중국에서 몰래 두부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이 씨는 북한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중국 남성에게 돈을 쥐어주고 1999년 위장결혼을 했다. 둘 사이에 애정은 없었으나 아들만큼은 이 씨에게 삶의 이유 자체였다. 그리고 2001년, 13개월인 아들을 제대로 품어보지 못하고 북측에 적발돼 고성으로 돌아가게 됐다.

약 6년간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이 씨는 또 다시 북한에서 탈출했고, 아들을 찾아갔으나 둘은 함께 한국으로 향하지 못했다. 중국인 남편과 그 가족이 아들을 상당히 아끼고 있었던 것. 중국 가족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고, 북한에서 탈출한 것에 대한 위험을 느낀 이 씨는 결국 모든 수법을 동원해 한국행을 선택했다.

다행히 아들은 남편 호적에 올라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이 씨는 "아들을 뒤로 한 채 떠나야 했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내 생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말부터 원주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된 이 씨는 당찬 마음가짐으로 한국에서의 성공을 다짐했다. 중국의 아들과 고향에 있는 고령의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을 통일이 된 그날이 되면 성공한 모습으로 맞아주기 위함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요리에 소질이 있었던 이 씨는 막국수집, 복집 등 원주의 몇몇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목표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임금 차별을 받는 등 서러운 시간도 많았다. 그렇게 식당 종업원으로 일을 한 지 5년만인 지난 2013년, 꽤 많은 자금이 모이자 여지없이 식당을 차렸다. 식당에서 일하며 터득한 노하우와 자신이 가진 손맛을 더하니 충분히 해볼만 한 것이었다. 고향에서 즐겨먹던 방식으로 만든 명태식해와 동치미 국물로 막국수를 만들면서 단골이 늘기 시작했다.

식당이 조금씩 자리잡으면서 같은 아픔을 가진 북한이탈주민들에게도 온정을 베풀수 있는 위치가 됐다. 지난 연말 북한이탈주민들이 모여 가진 송년회에선 냉장고를 후원하고, 명절때엔 강원남동부하나센터를 운영 중인 명륜복지관을 찾아 노인들과 북한이탈주민들에게 푸짐한 음식을 대접했다.

이 씨는 "원주로 건너와 식당을 열기까지의 고통과 외로움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지금 나는 무척 행복하다"며 "이 식당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더 큰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 씨는 지난달 원주에서 아들과 재회했다. 2011년에도 원주를 찾았던 아들은 지난달 다시 한 번 원주를 방문해 20일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어린 아들은 이제 15살이 되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들을 다시 보는 그날을 위해 이 씨는 오늘도 희망을 가지고식당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