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螺鈿)'은 여러 무늬의 조개껍데기 조각을 물체에 붙이는 일을 일컫는 것으로, 흔히 '자개'라 불린다. 이를 응용한 공예품으로는 나전 위에 옻칠을 해서 만들어 내는 나전칠기가 대표적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된 나전장 기능보유자는 현재 국내에 단 두 명밖에 없다. 원주 옻칠공예를 대표하는 줄음질의 대가 이형만(69) 선생이 그 중 한 명이다.

단계동 주택가 골목 안에 자리잡은 선생의 전통공예연구소는 늘 알싸한 옻향이 코끝를 찌른다.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선생은 매일 오전8시부터 새벽1시까지 밥 먹는 때를 제외하곤 이 곳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에 쏟는다.

경남 통영이 고향인 선생이 나전칠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역시 통영 출신인 스승 고 김봉룡(1902~1994) 선생을 만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오른팔을 크게 다쳐 중학 입학시험을 치를 수 없게되자 공부를 하고싶은 욕심에 무상으로 중등교육이 가능한 경남기술원양성소(공예학교)에 입학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기술원양성소 부소장이었던 고 김봉룡 선생은 조선 말 나전칠기의 명인으로 알려진 박정수 옹의 제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1세대로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장식공예품박람회에서 은상을 수상해 우리 민속공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바 있다. 또 원주에 정착해 지금의 원주 옻칠공예를 부흥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1963년 공예학교를 졸업한 이 선생은 개인공방을 차린 스승을 따라나서 일대 일 도제식 수업을 받으며 전통 기법을 전수받았다. 1970년 군복무를 마친 뒤에도 당시 원주로 공방을 옮긴 스승을 인사차 찾았다가 스승의 권유로 다시 원주에 정착했다.

스승이 작고한 후 2년만인 1996년 나전장 제10호 중요무형문화재 전승자로 지정된 선생은 로마교황청을 비롯한 세계 유수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등 전통예술을 통한 국위선양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사)한국옻칠문화연구원 고문, 국회한문화포럼 특별회원, (사)원주옻칠문화진흥회와 아세아조형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가족들도 이런 선생의 영향으로 옻칠공예의 명맥을 잇고 있다. 배제대 칠예술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현재 부여 전통문화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장남 광웅(44) 씨와 선생의 옆에서 작업을 돕고있는 차남 상훈(42) 씨는 물론, 부인 문정선(68) 여사와 여동생 이미숙(50) 씨까지 옻칠공예에 입문한지 벌써 10여년의 경력을 자랑한다.

이중 차남 상훈 씨는 2010년 제9회 한국옻칠공예대전에서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으며, 누이 미숙 씨는 2009년 8회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 앞으로 원주옻칠공예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눈에 무리가 가는 작업이라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력이 가장 걱정이라는 선생은 더 늦기전에 개인전을 열 생각도 내비쳤다. 과거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의 인연으로 1988년 서울 인사동에서 함께 전시회를 가진 일은 있지만 개인전은 처음이다.

"내년이나 후년을 예상하고 조금씩 준비하고 있지만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연 선생은 "후학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그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작업에 열중하는 선생이 아무리 바쁜일이 있어도 흔쾌히 응하는 일이 있다. 후학을 지도하는 일이다. 스승에게 배운 기술을 전수해 전통공예의 맥을 계속 잇게 하는 것도 자신의 본분이라는 생각에서 거절하는 법이 없다.

10년 넘게 배제대 칠예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현재 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전통공예건축학교에 출강하고 있는 선생은 요즘도 매주 금요일이면 하루 9시간의 강의를 소화한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참신한 아이디어에 놀랄 때가 많다"는 선생은 "내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고 교류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선생은 "전통도 변화된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시점에서 전통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 온 결과"라고 설명한 그는 "생활양식은 바뀌었는데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했다. 원형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다른 것들도 받아들여 접목시키고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원주 옻칠공예가 출발은 늦었지만 교육, 작품성, 생산성 등 모든 면에서 여타 중소도시에 비해 앞서있다고 단언한 선생은 전국에서 가장 질 좋은 칠이 생산된다는 잇점이 있을뿐 아니라 원주 옻문화센터를 중심으로 후배 장인들이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발전속도도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주옻칠공예의 뿌리인 스승 고 김봉룡 선생의 기념관이나 교육관 건립이 늦어지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라고 밝힌 선생은 "원주옻칠공예 활성화와 맞물려 언젠가는 이뤄지겠지만 하루빨리 마무리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