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렸을 뿐입니다."

거듭된 부상과 불운에 시달리다 고향 원주에서 화려한 부활의 날개짓을 하고 있는 육상 선수가 있다. 원주시청 육상 중장거리 선수 최보운(26)이 그 주인공이다.

최보운은 상지여고 시절 '한국 육상 대들보'로 불렸을 만큼 유망주로 인정받았고, 실업명문 SH공사로 스카웃 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한국 여자 육상의 미래를 짊어질 선수로 주목받았다. 특히 고교 3학년 때는 춘계대회와 추계대회, KBS배, 종별대회, 전국체전 등 그 해 참가한 모든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육상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훈련도중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 자칫 아킬레스건이 끊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만일 그 때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끊어졌다면 더 이상 육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는 그 후로 3년을 꼬박 재활을 위해 보냈다.

3년간 성적을 내지 못한 선수를 계속 잡아둘 실업팀은 없다. SH공사를 나와 다시 화성시청에 입단했지만 부상은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이번에는 대퇴부 부상이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운동을 그만둬야 하나 라고 심각하게 고민했었죠." 열두번도 더 그만둘 생각을 했다는 최보운은 그 때마다 이를 악물고 육상화 끈을 다시 동여맸다고 했다.

악몽처럼 따라붙던 부상도 최보운의 집념을 이기지는 못했다. 최보운은 2012년 전국실업단대항육상경기대회와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1500m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하며 당당히 재기에 성공했다.

때 마침 원주시청에 부임한 이진일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국가대표 지도자로 화성시청과 합동훈련을 자주 하면서 그녀의 자질과 집념을 높이 산 이 감독이 원주에 오자마자 결정한 '신의 한 수'였다.

고향으로 돌아 온 최보운은 오로지 달리는 데만 집중했다. 종합운동장에서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그 결과 입단 첫해인 지난해 4월 제17회 전국실업육상경기선수권대회 1500m에서 팀에 창단 첫 전국대회 금메달을 안긴 것을 시작으로, 7월에는 KBS배에서도 우승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6월 도민체전에서 대회신기록을 수립하며 2관왕에 올랐다.

이달 초 일본에서 열린 한일교류전에서는 1천500m를 자신의 최고기록이면서 올시즌 국내선수 최고기록인 4분25초2에 주파하며 인천아시안게임 출전 가능성을 높였다. 만일 최보운이 아시안게임 출전자격을 획득한다면 원주시청 육상팀이 배출한 첫 국가대표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쓰게 된다.

"아직 부족하지만 아시안게임 출전은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밝힌 최보운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며 개인 최고기록 경신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혹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속상하겠지만 내 실력이니 어쩔 수 없다"는 그녀는 "다음 기회를 위해 더 많은 시간 열심히 준비하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고 했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트랙경기장에서는 어느새 노장 소리를 듣는 육상계의 맏 언니다. 최보운은 후배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어렵게 훈련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요즘 후배들을 보면 너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그녀는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 오늘도 트랙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