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화단을 손질하다가, 비탈진 화단 끝에 뿌리가 다 드러난 작은 라일락 한 그루를 발견했다.

지난 해 여행길에 키는 작지만 향도 좋고 이쁘다고 구해온 '미스김 라일락'이다. 화단 끝자락에 심었더니 흙이 씻겨 내려 가뭄 속에 힘겹게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라죽은 듯 보였지만 측은지심에 큰 화분에 옮겨심고 물을 듬뿍 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그 나무는 가지마다 잎을 틔우며 생명의 기운을 가득 품고 당당히 자라고 있다. 4월의 마당에서 만난 한 그루의 나무는 '절대절명의 순간의 적절한 대응'의 결과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안산단원고의 꽃다운 아이들이 남긴 영상의 아이들은 기울어지는 배안에서도 천진난만했고, 불안해하면서도 '선내에서 그대로 있으라'는 잘못된 선내방송을 따르며 '네~'라고 대답하며, 어른들을 믿고 안전한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을 바라보며, 유품으로 건네받은 핸드폰 속의 사진과 영상을 통해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길 원한다는 아버지가 공개한 사고현장의 영상은 구조활동을 서둘러 '절대절명의 순간'에 구할 수만 있었다면, 그 배안의 모든 이들이 따뜻한 가족의 품에 살아서 안길 수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듯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배안의 아이들이 생사기로에 서있을 때도, 구조를 위해 모였다는 어른들은 사람의 목숨보다 자신들의 이권과 기득권 싸움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과 '사람보다 돈이 먼저'로 작동하는 사회부조리 그리고 구조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응과 태도는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사고 초기에는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을 바라는 간절함 마음으로 노란리본의 물결을 만들던 많은 국민들! 이제는 합동분향소 앞에 줄지어기다리며 '누구를 위한 대한민국인지?' '그 많은 아이들이 배안에서 죽어갔는데, 왜 구조작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지?' '사고의 원인과 말도 안되는 이 상황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가족을 비롯해 이 땅의 부모들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나라, 믿을 수 없는 언론과 정부'를 향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깨어있는 시민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는 잔인한 4월을 보냈고, 가정의 달을 맞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그리고 청소년주간이 있는 5월은 한 해중 행사가 많아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달이다. 그래서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동료와 후배들은 그 행사들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가정 파탄의 달'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의 그 5월과는 달리 그 많던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축소 운영되어 조용하고 엄숙하게 맞이하게 되었다.

수학여행과 이동야외활동 그리고 체육대회와 소풍이 없어졌다. 해마다 진행되는 어린이 날 큰잔치도 올해에는 연기하여 한글날에 진행된다고 한다. 그리고 청소년축제기획단에 참가하여 청소년 스스로가 기획하고 준비하는 청소년축제도 이 시국엔 그대로 진행되긴 어려울 듯 하다.

수련관에서 만난 여중생들에게 "수학여행이 없어지면 어떨 것 같아?"하고 물었더니 "우리도 단원고랑 같은 기간이었는데, 친구들이랑 같이 자고 밤새 이야기하고 놀면서 더 많이 친해졌어요" "사고때문에 수학여행을 없애야한다면, 배도 없애고 학교가 주관한거니 학교도 없애야지요" 라며 또박또박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과학습뿐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놀고 뒹굴면서 또래의식을 키우고 배려과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기른다. 안전을 위협하는 사회구조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개선하고 안전을 보강하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에겐 안전하고 즐거운 놀이와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성장할 권리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