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쯤 필요한 공사를 2~3년 안에 완공시켜 클라이언트들을 감동시키는 한국인의 힘은 건축, 토목을 넘어 문화예술계 전반까지 미치고 있다.

공연장 무대의 등·퇴장 구역은 객석에 노출되고 조명이 걸려야 할 자리에 소방시설이 설치돼 있어 배우가 동선을 바꿔야 하는 일, 어린이집 발표회가 전부인 공연장에 고가의 콘서트용 음향시설이 설치돼 있고 전문적인 사용법조차 알 수 없어 시설물들이 잠자고 있는 경우 등은 눈앞의 성과에 급급한 업자와 관계기관의 협업일 수밖에 없다.

특히 공공문화예술기관의 경우 당장의 성과와 실적을 앞세운다면 지역문화예술계의 지형은 성과 위주의 결과에 편향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문화예술계의 심각한 지형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특히 작금의 시대적 상황은 예술가들의 삶이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어려운 상황인 만큼 공공기관의 힘은 곧 권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주)원주문화재단을 보면 공공기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지역문화예술계 지형의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미명하에 절차적인 공정성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있는지 조차 의심케 한다.

또한 예술가들의 창작을 불분명한 잣대로 좌지우지 하거니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하청업자를 대하는 듯한 태도는 최근 우리사회에서 문제되었던 '갑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돈을 줄테니 여기서 벗어나지 말라는 듯 금년엔 타 시·군에는 가지도 말라고 규정을 만들어 버렸다. 지역 예술가들에게 월급이라도 주려는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뿐만 아니라 규정에도 맞지 않는 지원금 취소와 반납은 물론이고 논리적인 심의 및 재심의 요청도 무시하더니 결국은 예술단체와의 행정심판 싸움에서 완패하고 말았다.

도시발전이라는 거대 담론을 문화예술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이야 높이 사겠지만 그러한 성과로 인해 잘못된 점을 덮고 간다면 재단이 꼭 지켜야 할 정책개발, 민주적인 토론과 절차, 공공성의 원칙 등이 사라지고 그 결과, 오히려 성과에 대한 열매도 제대로 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술가들이 갖는 창작의 형식과 주제, 방식과 과정은 철저히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선택의 몫이다. 예술가들로 하여금 법정싸움을 하게 한다면 이미 공공성을 포기한 것이 맞다고 봐야 하겠다. 지역문화재단은 예술창작에 대한 존중과 지원을 통해 지역문화예술발전에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예술이 우리 사회에 공기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일이 최상의 미션이라는 싱가폴 예술위원회의 선언이 다시 한 번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