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당의 3당 정립 구도가 깨졌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연상시키던 안철수 신당의 정치 실험은 결국 무산된 것이다. 촉나라 땅과 같이 무주공산의 기름진 정치적 영토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제3지대에 신당을 창당한다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전략은 적벽대전을 앞둔 오와 촉의 전략적 제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일까.

정치학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소선거구 제도 아래에서는 양당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영국과 미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제3당인 자유당은 2010년 총선에서 23%를 득표했지만 전체 의석 가운데 9%도 안 되는 의석만을 얻었을 뿐이다. 가장 많은 표를 얻는 한 사람을 당선자로 결정하는 소선거구, 최다수제의 선거제도 아래에서 제3당은 설 자리가 없다.

끝까지 갔을 때 민주당이 제3당이 될지, 안철수 신당이 제3당이 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어쨌든 양 당이 서로 힘을 합쳐 신당을 만들기로 결정했으니 소선거구제 아래에서는 대단히 위험성이 높은 3당 정립 구도의 실험은 성사되지 못했다.

문제는 기초자치단체의 선거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공약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모두 정당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야당 소속 후보자들이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정당을 탈당한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하게 생겼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당 공천을 하겠다고 하는데 야당은 하지 않으니 여당은 후보가 단일화 되지만 야당은 후보가 난립할 수밖에 없다.

여당 표는 뭉치지만 야당 표는 분산될 것이다. 유권자들이 알아서 야당 후보를 단일화하여 투표하지 않는 이상 이기기 어렵다. 야당의 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겨우 경쟁이 된다는 결론이다.

이에 대해 다급한 입장에 빠진 야당 후보자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광주의 어느 구청장 선거에서 안철수 신당 소속 후보들은 여론조사 방식으로 후보를 단일화 하겠다고 선언했다(<연합뉴스>, 3월4일).

청주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현직 시장은 지방자치의 본질을 살리기 위해 기초선거 정당배제를 환영하며 인위적인 야권 후보 단일화를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선거에서 패배해도 상관없다고 못을 박았다(<충북일보>, 3월3일). 강원도의 경우 한 신문은 야당 소속 후보들이 '대혼란'에 빠져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강원도민일보>, 3월3일). 이 보도에 따르면 야권 후보자들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야권 후보단일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민주당이 합리적 후보 조율 방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을 제 각기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거 역사를 보면 제헌의회 선거부터 1954년의 제3대 총선까지 무소속 후보들이 상당수 진출하였다. 제헌의회 선거에서 한국 보수야당의 뿌리인 한국민주당은 친일 성향으로 인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김구 중심의 한국독립당은 분단이 고착화된다는 이유로 선거를 거부했다.

1949년에 재결성된 민주국민당은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받아 위축되었고, 1952년에 창당된 여당인 자유당은 관권, 금권 선거를 통해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위세를 떨쳤다. 불법적인 사사오입 개헌 이후 야권은 똘똘 뭉쳐 1955년에 민주당으로 재결집 되었는데,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야당은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1958년 제4대 총선에서 자유당과 민주당은 한국 선거 사상 최초로 양당 체제를 이루게 되어 정당 중심의 선거체제를 굳혔다. 이때 원주에서는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야당 후보(박충모)가 당선된 바 있다.

그렇게 보면 외형만으로는 현재의 기초선거가 정권의 지지를 받는 여당과, 후보가 난립한 야권이 경쟁했던 1954년의 선거와 비슷하다. 그때 이승만 정권은 3선 개헌을 위해 국회 의석 3분의 2를 확보해야 했고, 그에 따라 선거과정에서 경찰력 등 국가권력을 총동원하는 대표적 부정선거를 저질러 압도적으로 승리한 바 있다. 이 선거 결과는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선거풍토는 당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깨끗해졌다. 그러나 기초선거에만 국한한다면 여권은 결집되고 야권은 분열되어 있다는 점에서 당시와 다를 바가 없다. 원주의 기초선거가 1954년의 선거로 갈 것인지, 1958년의 선거로 갈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