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추석 전 벌초를 위해 무실동 선산에 있는 종중의 묘를 찾았던 종손 원모(63·일산동) 씨는 자신도 모르게 묘소가 사라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확인해보니 종친회 회원 4명의 주도하에 2012년 4월 5일 한식날 임의로 분묘를 개장해 다른 곳으로 이장했던 것. 게다가 일을 주도한 일부 종친회 회원들은 개장신고도 하지 않았으며, 이장을 한 장소의 비석에 종친회 회장, 부회장 등 임원으로 자신들의 이름으로 마음대로 새겨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분노한 종손 원 씨와 종친회 회장 등은 2012년 11월 이들을 분묘 발굴죄로 고소했다. 재판결과 이들 4명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김은경 판사는 지난달 22일 종중의 허락없이 조상의 묘를 개장해 이장한 혐의로 기소된 종친회 회원 원모 씨 등 4명에게 징역 10개월~1년,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오랜기간 지켜온 조상 묘소에 대한 관리 및 처분의 권리는 종친회가 아닌 종손에게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것.

종친회 회장은 "앞서 이와 유사한 대법원 판례들도 있듯이 종손과 종친회 동의 없이 조상의 묘를 옮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집안의 예민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옳고 그름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주원씨 원성백계 시승공파 종친회는 무실동 산 75번지 종중 임야에 400년 이상된 중시조 할머니 묘소와 18세조 할아버지 묘소 등 선조들의 묘소가 있어 관리인을 두고 임야 및 묘소관리를 해왔다. 하지만 뚜렷한 명분없이 불법으로 개장 및 이장을 한 이들을 두고 종손 및 종친회 회장 등은 조상을 욕되게 하고 후손들의 근본을 뒤흔드는 처사라고 밝혔다.

또 종중의 묘소를 개장하려면 여러 후손들의 동의를 얻어 개장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종원 몇몇이 주동이 돼 선조의 묘소를 파헤쳤다는 점, 종중의 묘소는 법적으로 종손의 허락이 있어야 개장할 수 있는데 전혀 통보하지 않았다는 점, 묘소의 이장은 뚜렷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는 점, 한치의 사과도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지난해 3월 사건을 맡은 담당 검사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종손 원 씨는 "일을 주도한 종친회원 4명은 경찰 및 검찰 조사에서 묘소의 훼손을 이유로 개장 및 이장했다고 주장했으나, 관리인을 두고 관리하고 있는 상태여서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며 "일이 발생하고 난 뒤 관리 책임에 대해 종원들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 "판결에서도 밝혀졌듯이 임의로 조상의 묘를 파헤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피고소인 원 씨는 "종손 원 씨가 지난 2008년 종중 소유의 무실동 소재 땅 5천여평을 10억원에 매도하고 임의로 사용해 횡령한 혐의로 지난 2012년 실형을 선고받는 등 종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종원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며 "이번 판결을 인정할 수 없으며 항소할 생각이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