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생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로 모두의 안부를 물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꿈틀, 움직이는 호응이 놀랍다. 세상사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 젊은이들이 무심했던 게 아니라, 사실은 다른 사람들 마냥 억눌려 있었던 것이라는 걸 느끼며 가슴이 애리다.

그리고 오죽 답답했으면 70~80년대 때 표현방식인 대자보를 붙였을까 싶어 기성세대로서 그리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미안하다. 모두가 안녕하지 못한 일차 책임에 정치인들이 가장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더 죄스럽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를 되돌아보자.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확실한 국가 책임 보육을 약속하면서 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영유아 보육료 국고보조율을 10%포인트 인상하는 방안만 넣었다. 이는 지자체가 요구해온 20%포인트 인상의 절반에 불과하다.

셋째아이부터는 대학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최근 교육부가 마련한 계획을 보면, 전체 가정이 아닌 소득 하위 80% 가정의 대학 신입생만 대상이고 지급액도 연간 450만원뿐이며, 만 스무 살이 넘어서 입학하면 신청자격도 없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내년부터 전체 고등학생의 25%씩 해마다 늘려 2017년에는 무상교육을 완료하겠다는 공약과 학급 학생 수를 해마다 1~2명씩 줄여 2017년에는 OECD수준으로 교실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공약 예산에는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를 떠올려보자. 가장 큰 화두는 '복지'였다. 복지는 국가의 책무인 만큼 국고 지원이 필수라고 보는 보편복지와 부자들에게까지 공짜밥을 줄 까닭이 있느냐는 선별복지가 팽팽히 맞섰다. 당시 친환경 무상급식은 강원도민이 바라던 정책이었고 강원도지사, 강원도교육감뿐만 아니라 많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지한 공약이었다. 적지 않은 입후보자들이 너나없이 보편복지를 약속했다.

지금 나와 같이 의정활동을 하는 어느 도의원도 선거당시 고교평준화와 무상급식 점진적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지만 그 누구보다도 고교평준화와 무상급식을 반대했다. 선거 때 약속했던 공약을 비추어보면 다 거짓 약속, 공약(空約)이었다. 마치 약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다 주겠다고 한 약속들이 사실은 당선을 위해 지어낸 진정성 없는 헛말이었다. 공약이란 어떤 일을 책임 있게 실행하겠다고 유권자한테 하는 약속이란 게 무색하다.

또 어느 의원은 무상급식으로 인해 식자재 원가가 낮아져 아이들이 질 낮은 밥에, 그것도 일부는 충분히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화장실, 냉난방시설 등 노후한 학교시설을 교체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데이터도 정확하지 않은 정치적 선동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OECD 국가들 대부분은 어린이에게 GDP 대비 1퍼센트 이상의 예산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고작 0.4%의 예산만 쓰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우리 복지의 현주소다.

투표권이 없고 자기가 바라는 일을 발언할 기회가 없어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마음이 들까. '안녕한' 세상을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해야 할 정치인이 '안녕하지 않은' 세상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