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역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나는 올 봄 원주역으로부터 학생들이 참여하는 벽화작업의 제안을 받았다.

마침 강단에서 '공공미술' 을 강의하고 있는 터라 나와 학생들은 그 제안에 응했다. 학생들은 현장 답사 후 주제 정하기 토론을 거듭하던 끝에 '지역사회에 헌신적으로 공헌하며 원주를 빛낸 인물' 4명을 그리기로 결론을 내렸다.

고려 시대 '합단'의 침략군을 격퇴하고 원주를 지켜낸 '원충갑' 장군과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제에 의롭게 저항하다 산화한 의병장 '민긍호 대장', 그리고 작년 유엔의 '협동조합의 해' 선포와 2013년 원주시가 '협동조합관광도시'로 선정된 점에 착안하여 '협동조합의 도시 원주'의 위상을 전파한다는 관점에서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 네 분으로 압축했다.

지학순 주교는 복음화와 민생의 구제를 동체적인 구원의 실현으로 확신하며 신협활동을 적극 지지했고 장일순 선생은 사람과 자본, 사람과 사회의 협동성의 구현을 광야의 외침처럼 부르짖으며 신협운동을 계몽했다.

두 분이 희구한 협동적인 경제사회 시스템은 이제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대안적인 생활경제의 틀로 만방에 알려지게 됐다. 두 분의 노력은 밑거름이 되고 뿌리를 내려 '협동조합의 도시 원주'라는 큰 나무를 자라게 했다.

공공미술은 여론의 도마에 자주 오르내린다. 지학순 주교 그림에 대한 원주교구청의 고견에서, 장소가 격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은 받아들이기가 민망하다. 관계자의 직무에 대한 열의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러나 벽화는 그림일 뿐이다.

인물화는 인격을 대신하지도 않지만 벽화를 인격화할 경우 황당한 우상 숭배와 같은 오류에 빠지게 된다. 비천한 곳에서 탄생한 기독교의 역사를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다.

공공기관에 인물벽화는 적절하지 않다는 철도공사의 여론 때문에 원주역 관리자들이 힘들어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참으로 가슴 아프다.

우리사회 특수한 현실에 비춰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역사 진화의 변증법적 부침의 괄호 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인정한다 한들 공공기관이 특정 화풍의 벽화만 선별적으로 수용한다면 우리사회를 어떻게 문명사회라고 말 할 수 있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은 선진화 사회의 척도이며, 그 모범을 공공기관에서 실천해야한다. 다양성의 공존은 균질성의 집합이 아니라 이질성과 차이의 공생을 의미한다. 인류의 역사는 차이를 존중하고 조정해가는 지난한 여정이다.

원주역사의 인물벽화 철거는 제작에 참여한 학생들의 동의를 구하는 교육적이고 법률적인 합의와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지역문화의 계승과 발전은 우리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교육하고 전파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원주의 공공기관이 아니면 어느 도시 누가 원주의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감당하나. 우리지역의 교육기관과 공공기관이 협동하며 열린 모습으로 감당해야할 몫이다.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장되고 참신한 발상이 적극 수용되는 관대한 공직사회와 열린 도시 원주를 기대하며 원주역사 벽화에 대한 기존의 입장들이 전향적인 시각에서 재고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