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연재가 끝난 인터넷 만화 미생을 읽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기업만화라고 한다. 그 무대는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종합상사의 소위 '상사맨'들의 삶의 현장이다.

글로벌화된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상품 아이템들을 개발해내는 과정,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서 간, 팀원 간 갈등, 기업 내 정치 역학, 팀 내부의 위계서열 구조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끊임없이 성과를 만들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들의 살인적인 경쟁 현장, 가정과 개인을 희생하고 조직에 충성해야만 살아남는 기업 문화, 그 내부에서의 꿈과 좌절, 환희와 고통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여기서 주의를 끄는 것은 팀 내부의 위계서열적 역할 구조다. 현대화된 조직구조와 업무 과정 속에서도 의연히 살아있는 상명하복의 권위적 조직 문화가 그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곧바로 군대식 명령과 복종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의 중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비정규직이다. 프로 바둑기사의 길에서 탈락한 고졸 출신 주인공이 대기업의 인턴을 거쳐 비정규직 사원으로 선발되지만, 정규직 진입에는 대졸 출신들과는 달리 실패한다. 만화와 달리 우리 삶의 현실에서는 정규직 전환이 오히려 예외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비정규직의 불안한 지위, 업무 환경, 보수를 포함한 부당한 대우 등을 잘 그려내고 있다. 기업 내부에서 그리고 팀 내부에서 생산되는 잡다한 업무들(가치가 인정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잡무'들)과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부수되는 고통들, 그것들의 최종 귀착지는 비정규직이다.

이것은 군대 내 최말단 사병의 경우와 유사하다. 그들의 존재 의의는 그 조직이 만들어내는 찌꺼기들을 처리하는 '허드레' 노동, 감정 노동에서 찾아진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자신의 삶과 가치를 박탈당하고 소외되는 정규직들의 고통과 좌절을 위무해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비정규직이다. 노동 착취와 감정 착취의 마지막 귀착지이다.

정규직은 자신의 착취를 비정규직을 위한 것이라고, 비정규직이 견뎌내고 거쳐야만 하는 필수적 단계라고 자신을 변호한다. 그게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지는 선임이 되어보면 알 거라는 식이다. 나름대로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군대는 시간이 가면 신병이 고참 계급으로 진급하지만, 오늘날 사회 현실은 중세의 신분사회처럼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비정규직이라는 굴레에 묶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정규직의 존재 형태 가운데 하나가 대학생 아르바이트다. 학생들과 상담을 해보면 상당수 학생들이 알바를 하며 학비 내지 생활비를 벌거나 부족 부분을 보충한다. 주말에만 일하는 학생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주중에 저녁시간, 그것도 밤늦게,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다음날 학교 수업에서 졸거나, 졸지 않기 위해 잡담이나 휴대폰 조작으로 시간을 때운다. 성적도 잘 안 나오고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다. 결석을 밥 먹듯 하다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나온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어느 학자는 이들처럼 사회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호모 사케르'라고 부른다. 비정규직은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온당한 '자리'가 배제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자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기는 하다. 또 다른 학자는 그래서 이들의 자리, 몫을 '몫 없는 몫'이라 불렀다.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이라는 정당한 몫을 갖지는 않지만, 정당한 몫이 없다는 그러한 처지로서의 몫을 갖는다는 것이다. 역설적인 몫이다.

노동시장에 진입했지만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들, '몫 없는 몫'을 갖는 사람들, 비정규직과 실업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존재가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기업만화 '미생'의 주제로도 떠오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