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 있어 보건진료소는 단순히 의료서비스만 제공하는 곳이 아닌 지역주민의 사랑방이자 문화·복지공간으로 자리 잡아 마을 구심점 역할을 해내고 있다.

원주에는 8개 보건진료소가 있는데 특히 진료소장들은 보통 10년 이상 지역에 머물며 주민들을 보살피고 그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면서 의료기관장이 아닌 주민들과 가족처럼 생활하고 있다.

윤현숙(58) 호저면 고산보건진료소장은 올해 감회가 새롭다. 내년 6월 말을 끝으로 30년을 머문 마을에서 떠나야하기 때문. 2015년이 정년이지만 내년에 사회적응 및 개인시간을 갖는 공로연수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상 고산보건진료소에 머물 시간이 1년도 채 안남은 것이다.

윤 소장은 지난 1981년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호저면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원주여고와 원주전문대(현 강릉원주대)를 졸업하고 3년10개월간 철원에서 근무하다 호저면으로 발령받았다. 당시에는 호저면사무소 뒤편에 진료소가 있었다고 한다. 고산보건진료소에 머물게 된 것은 1983년이다. 그리고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이곳에 몸담으며 남편 안광수(68) 씨와 혼인했고, 두 아들을 낳아 길렀다.

지난 30년간 보건진료소에서 근무했던 시간,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따뜻했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오면서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호저면에서 그녀는 잊지 못할 추억을 가슴에 쌓았고 주민들과 행복한 동행을 이어갔기에 무척이나 소중하다고 한다.

마을에서 7명의 아기를 받아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한다. 1987년 전국민의료보험이 시행되기 이전에 병원에 갈 형편이 못되거나 시내로 이동하기 쉽지 않은 주민들의 경우 윤 소장에게 연통한 뒤 출산했다고 한다.

교통편이 전무한 시골이다보니 경운기를 타고 가거나 어렵사리 부른 택시를 타고 산모가 있는 집으로 향해 출산을 도왔다. 젊은 나이에 아기를 받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아기가 건강히 태어나고 가족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때의 보람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평소 진료소는 문이 닳듯 많은 동네 주민이 찾아와 윤 소장과 담소를 나누곤 한다. 굳이 진료를 받지 않더라도 주민들은 거리낌 없이 진료소를 찾아온다. 한창 수확기 때는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여름이나 가을철에는 농작물이 진료소 한켠에 쌓인다. 윤 소장에 대한 고마움 때문. 취재 중에도 한 주민이 찾아와 잘 익은 복숭아를 놓고 가 눈길을 끌었다. 인터뷰 하면서 윤 소장의 책상 위에 놓인 감사패들이 눈에 띠었는데 고산리, 옥산리, 광격리 주민들을 비롯해 노인회, 새마을회, 호저면 등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달한 것들이다. 윤 소장에 대한 고마움이 얼마만큼인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윤 소장은 호저면에 값진 보물을 안겨주고 왔다. 호저면의 대표 문화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호저마을춤'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2007년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간호학과, 원주시, 호저면사무소, 고산보건진료소 공동으로 '여성결혼이민자 지역 통합사업' 일환으로 호저마을춤이 시작됐다.

지역의 여성결혼이민자를 비롯해 부녀자, 노인들이 어우러져 강원도 아리랑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다. 처음 강원도립무용단 김영주 단장의 지도로 첫 발을 내디딘 호저마을춤은 이후 윤 소장이 지휘봉을 맡아 이끌었다. 매년 호저면 척사대회, 체육대회, 기타행사 등에 참여해 면민 화합을 이끌어왔다.

현재 27세 최연소 여성결혼이민자부터 87세 어르신까지 70여명이 참여하면서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활동을 펼쳐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11년 원주다이내믹페스티벌에 참여해 인기상을 수상하며, 많은 원주시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고 작년에는 당당히 은상을 수상했다. 올해도 참가할 계획이다.

윤 소장은 "호저면에 머물면서 주민들로부터 크나큰 사랑을 받았고 그들로 하여금 내 인생에 다시 찾아오기 힘든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며 "앞으로 1년도 안 되는 시간이 남았는데 주민들과 지난날을 추억하고 보다 보람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묵묵히 지키겠다"고 말했다. 　

박동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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