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 사회복지시설에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사진기를 든 콧수염 난 사내를 볼 수 있다. 바로 프리랜서 사진작가 한진규(54) 씨다. 한 씨는 12년 동안 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며 사진 봉사를 하고 있다.

한 씨는 3남2녀 중 장남으로 개인 사업을 하다가 IMF 시절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삶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전국을 떠돌던 중 원주에 정착하게 됐다. 생활보호 대상자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회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 그때마다 군대에서 배운 사진기술은 한 씨에게 큰 위로가 됐다.

한 씨는 "우연히 복지관을 찾아 그곳에서 만난 소외된 이웃들을 무료로 촬영해 준 것이 이제는 내 삶이 됐다"고 말했다. 한 씨가 복지시설 행사에만 얼굴을 비추는 이유가 있다. 소외계층이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웃음을 머금은 어르신들의 생애 가장 환한 표정을 찍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진기를 둘러맨다. 전문 프로사진작가가 아닌 라이브사진작가이기에 예술창작을 목적으로 하기보단 대중사진을 찍는다.

한 씨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사진에 담아내기 위해선 셔터를 수백 번 눌러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시설 이곳저곳을 누비며 어르신들을 위한 영정 사진을 찍기도 하고 무료로 출력해 선물하기도 한다. 간혹 복지관에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행사사진을 맡기기도 한다.

봉사를 하다가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된 셈이다. 한 씨가 사진 봉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시각장애인을 촬영했을 때.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한 씨가 찍은 사진을 들고 "사진 잘 나왔나요"라고 물을 때마다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행사 당일 200~300명의 얼굴을 촬영한 뒤 표정이 살아 있는 사진만을 고집스럽게 골라내는 한 씨는 "사진에도 영혼이 있다"고 말한다. 이어 "살아 움직이는 것은 흔들리기 마련이고 미세한 동작까지 사진에 담아내는 것이 내 일이다"고 한다.

최근에는 향토음악인협회 활동을 하며 가수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공연 수익금 전액을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으로 기탁하고 있다. 휴가철을 맞이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공연을 하고 즉석 사진을 찍는다. 사진 한 장 가격은 정해져 있지 않고 내고 싶은 만큼만 내면 된다.

한 씨는 프리랜서 활동과 봉사를 철저하게 구분한다. 하지만 보수가 적다 보니 사진기를 수리하기에 벅차다. 한 씨가 들고 다니는 사진기는 대당 300만원으로 6개월에 한 번씩 수리해야 하기 때문. 한 씨는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살아가는데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여러 장르의 사진가가 활동하고 있지만 한 씨처럼 봉사를 전문으로 하는 사진가는 드물다. 가족은 성화선(53) 여사와 1남 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