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비오톱지도 제작에는 6년이 걸렸고, 사업비는 9억원 넘게 투입됐다. 작년 6월 제작을 완료했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서 비오톱지도는 '판도라의 상자' 취급을 받고 있다. 비오톱지도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것을 우려해 서랍 깊숙한 곳에 모셔두고 있는 상황이다.
　
비오톱이란 특정 식물과 동물이 군집을 이룬 서식지를 뜻한다. 원주시 전역을 자연환경 보전 정도에 따라 등급화 하여 보전지역과 개발가능지역을 도면화 했다. 절대적으로 보전해야 할 지역과 개발과 보전을 조화해야 할 지역, 그리고 적극적인 개발이 가능한 지역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자연환경 보전과 개발의 조화를 통한 자연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지난 2007년 사업이 시작될 때 부터 제작을 완료하기까지 시민들은 비오톱지도에 관해 무관심 했다. 토지별 등급 지정을 완료하고 열람공고가 난 후에야 비로소 비오톱지도의 '위력'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비오톱지도에 관한 홍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사업을 입안하는 단계에서 충분한 여론수렴이 없었던 데다 진행 과정에서도 홍보에 무관심했다. 오히려 약 6천건의 민원이 제기되면서 학습효과가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비오톱지도가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원주시는 재조사를 통해 보전지역을 축소하고 개발지역을 확대했지만 민원을 잠재우진 못했다.
 
게다가 일부 시의원들이 민원에 편승해 비오톱지도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개정 조례안을 발의하는 바람에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비오톱지도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원주시가 비오톱지도를 반영한 도시계획조례 개정안을 시의회에 상정해 통과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선 시의회에 상정해봐야 통과하지 못할 것이란 예측이 제기되면서 비오톱지도는 서랍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기업이라면 6년간 공을 들였고, 9억원의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된 프로젝트를 서랍 속에 묵혀두지 않을 것이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 공직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사기업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녕 도시계획조례에 반영하기 어렵다면 차선책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관련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시급히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생태계는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몇 년 묵히고 나면 현재의 비오톱지도는 아주 비싼 용역비를 주고 만든 '환경 보고서'에 그치고 말 것이다.
　
원주시는 중부권 최대 규모의 기후변화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개관한 기후변화대응 교육연구센터에 이어 올 연말 행구공원 내 기후변화대응 홍보관까지 준공되면 외형은 그럴듯 하게 갖추게 된다. 그러나 속 빈 강정이란 빈축을 받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비오톱지도를 서랍에서 꺼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