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이 내려 쪼이는 한낮 용감하게 원주천을 걸었다. 모자와 선글라스도 썼다. 그늘 쉼터에 몇 명이 쉬고 있을 뿐 걷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매일 걷는 습관과 건강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무더위를 이기는가보다.

둔치에 있던 토끼풀. 노랗고 하얀 수많은 들꽃들이 요사이 둔치 정비사업으로 모두 베어나가 안타까운 마음이다. 큰 군락을 이룬 토끼풀은 동화 속 요정이라도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숲을 이뤘고, 화선지에 하얀 물감을 뿌려놓은 듯 넓은 망초꽃밭은 미지의 하늘나라를 만들었었다. 원주천이 주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지금은 개울가에 오손 도손 피어있는 토끼풀을 비롯해 이름 모를 들풀과 들꽃 그리고 무성한 갈대숲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뿐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자란 무성한 갈대숲은 개울가를 메우고 자연의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 풀 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진한 풀 향기는 걷는 이의 마음을 배부르게 한다.

며칠 전 얘기다. 원주천 개봉교 아래 작은 다리 옆에서 한 할머니가 배추를 다듬고 있었다. "배추를 잘 키우셨네요". 말을 건넸다. "단속반이 이렇게 다 엎어놨다"며 푸념을 한다. 다 자란 배추를 수확 하는 줄 알고 던진 인사였는데 할머니의 원망 섞인 대답에 낯이 뜨거웠다.

어제 저녁 걸을 때까지만 해도 길가 작은 텃밭에 배추, 콩, 아욱, 파, 상추, 등이 싱싱한 자태를 뽐내며 식단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다 크지도 못한 것들이 모두 뽑혀 밭 여기저기에 버려져 있었다. 할머니는 배추 더미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 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원주천 둔치나 냇가 구석 작은 공간을 개간해서 텃밭을 일구는 것이 공공 토지를 허가 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금지돼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텃밭 사용을 허가하고 묵인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 둔치나 냇가가 남아 있지 못할 지경이 될지도 모르고 한두 번 허가하다보면 누구는 하게 하고 누구는 못하게 한다고 민원에 시달릴 것이 뻔한 일이다.

그래도 몇 달간 풀을 뽑아 밭을 만들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정성을 들여 키어온 농작물을 뽑아 버리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밭을 만드는 초기과정에 농사금지에 대해 이해를 시키고 못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농작물이 다 자라 추수한 후에 어르신께 다음부터는 하지 않도록 단단히 알려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한참 자라는 농작물을 뽑아버리면 농작물도 아깝고 그동안 땀 흘리며 일군 어르신을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지 않은가. 법이나 규정을 집행하면서 시민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은 올바른 행정이라 할 수 없다. 더욱이 힘없는 약자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할 일이다.

어떠한 법도 인간의 가치 위에 존재할 수 없다. 할머니 곁을 떠나오면서 할머니의 외침이 귓가에 오래 남는다. "어려운 사람과 나눠 먹지 내가 혼자 먹나. 내가 도둑질을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