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발표된 정부의 지역공약 이행계획에 따르면 강원도 8대 공약 가운데 6개 공약이 모두 신규사업으로 분류, 당장 추진이 어렵게 됐다. 일곱 번째 공약인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지정이 가까스로 성사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강원도는 빈손이나 다름없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안면을 싹 바꾸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중앙정치권이 강원도민과의 약속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12월 춘천, 원주, 속초를 잇따라 찾은 유세 현장에서 도내 SOC사업의 조기 추진을 약속했었다. 박 대통령은 12월 2일 춘천 유세에서 "춘천~속초간 동서고속화철도사업은 춘천과 강원의 발전은 물론이고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며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같은 날 속초 유세에서도 "필요한 관광인프라를 확충해서 미래로 성장하는 속초를 만들겠다"며 "우리 국민들이 편안하게 속초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속초~춘천간 동서고속화철도를 조기에 착공하고,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는 일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12월 13일 원주 유세에서는 "여주~원주간, 원주~강릉간 복선전철사업도 차질없이 추진해 수도권에서 중부내륙과 동해안권을 연결하는 연계 교통망의 중심 거점으로 확실히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대통령 예비후보시절인 지난해 10월 18일에는 강원도 선대위 발대식에 참석해 "강원도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부족한 교통망을 새누리당이 책임지고 개선할 것이고,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원주~강릉 복선전철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8월 10일 춘천에서 열린 대선 경선 후보 강원합동연설회에서는 "동서고속화철도를 조기 착공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R)와 연결하는 등 강원도를 유라시아 경제권 시대를 열어가는 전초기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동서고속화철도는 지난 20여년 동안 닳고 닳은 단골 선거공약으로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역시 첫 번째 공약목록에 올렸다. 여주-원주 복선전철사업 또한 2018평창동계올림픽 관문인 원주지역의 최대 현안 사업으로 부상됐고, 원주 첨단의료기기 생산단지 또한 정치적인 이유로 빼앗긴 첨단의료복합단지를 대체할 사업이기에 원주시민들의 기대감이 어느 때 보다도 컸으리라 본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고 민심을 움직일 수 있는 카드라고 봤던 것이다. 강원도민들은 너무 많이 속고 실망한 나머지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하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은 박근혜 정부 역시 역대 정권의 수많은 허언(虛言) 목록 말미에 한 줄을 보태는 데 그치고 말았다. 선거공약이 일정부분 철학과 의지의 표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다 해도 이건 상식의 경계를 한참 벗어난 것이다. 다 되는 것으로 믿도록 약속을 하고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놓고 이렇게 표변(豹變)하는 것이 정치란 말인가?

강원도로서는 모욕적인 상황이라 할 만하다. 2011년 총선에서 9석의 국회의원을 몰아주고, 지난해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결과가 이런 것인가? 지역의 민심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일말의 염치라도 있다면 이럴 수 없을 것이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제 박근혜 정부와 중앙정치권이 강원도와의 약속 파기는 선거공약의 차원을 넘어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신뢰'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강원도가 이런 대접을 받는데 어찌 그 인과의 고리가 없을 것인가. 무엇보다 공약 당사자의 의지가 딱 여기까지라는 반증일 것이고, 정부와 정치권 이른바 '중앙'의 강원도에 대한 시각이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또한 그럴 것이다. 뺄 것도 보탤 것도 없이 그대로 강원도적 현실이자 정치적인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눈을 안으로 돌려 자책점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그들의 구차한 변명이 무더위와 장마에 지친 우리들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직도 강원도는 물감자 신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