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기는 연세원주장례식장 상담실에서 장례지도사로 근무하는 조선행 씨가 생활보호수급자의 장례를 모시며 느낀 소회를 담은 글로 연세장례식장이 펴낸 '슬픔 없는 이별이 어디 있으랴!'에 수록된 글입니다.

저는 장례지도사입니다. 죽음이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시신을 깨끗이 닦아 드리고 수의(壽衣)를 입혀 드리고, 상처받은 유족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장례지도사입니다.

동네에 목욕탕 하나 없는, 바닷가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저는 어린 시절엔 화장실도 못가는 겁쟁이였습니다. 문밖에 있는 데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화장실에 가는 게 무서워 밤새 아픈 배를 꾹 참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던 아이였습니다.

그런 제가 죽음을 일상처럼 대하는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처음엔 주변의 시선도 그렇고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굳이 직장이 아니라도, 주변에서 상을 당하면 직접 가서 돕고 장례 절차에 대해 알려드리니 주위 분들이 저를 대견해 하시더군요. 그럴 때마다 제 일에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간 숱한 장례를 모시면서 여러 가지 가슴 찡한 일들을 겪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가난한 노부부의 사별이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을 즈음이었습니다. 비가 무척 많이 오던 여름이었는데 장례식장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내가 숨을 안 쉽니다. 죽은 거 같아요. 빨리, 빨리 좀 와줘요" 목소리만으로도 다급한 상황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주소를 확인한 저는 곧장 구급차를 타고 전화하신 분이 사는 자그마한 임대 아파트로 갔습니다. 집안은 어수선한 집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할아버지께서는 "고생 많았어. 마누라…" 이 말만 하시며 목 놓아 울고 계셨습니다.

할머니의 시신을 모시고 응급실로 오는 길에 몹시 힘겨워하시는 할아버지의 슬픔을 덜어드릴 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장례를 준비하려면 자제분들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전화는 하셨느냐고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식 없이 할머니랑 이렇게 살았어" 하시며, 사실 양자가 한 명 있었는데 이젠 연락도 안 된다며 참울한 표정을 보이셨습니다.

안타깝고 안됐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보단 '저 어르신께서 장례 치르실 형편은 되실까?' 라는 걱정이 앞서더군요.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그게 엄연한 현실이었으니까요. 걱정해주고 안타까워할 수는 있어도 장례비를 대신 내드릴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응급실 검안(檢案)을 끝내고 안치실에 할머니를 모신 후 어르신과 장례에 관해 상담을 시작하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죽은 마누라는 안됐지만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할아버지께서 먼저 우려의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 조심스레 여쭙자, 한 30만원 된다면서 "빈소는 안 차려도 수의는 좋은 것으로 해드리고 싶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딱한 사정에 도와 드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활보호)수급자라서 화장(火裝)과 납골(納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동사무소에 연락해 장례 보조비를 지원받고, 80만원 가량의 돈을 마련해 그럭저럭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화장장에서 모든 장례 일정을 마친 후 어르신을 집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어르신은 제 손을 꼭 잡으며 연신 고맙다고 울먹이셨습니다. 세상천지 달랑 하나뿐인 식구였던 할머니를 보내고 혼자 쓸쓸히 지내실 어르신을 뒤로하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는데 갖가지 상념들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조선행(연세원주장레식장 장례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