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자 천하지대본'이란 말은 정치용어, 선거용어로 등록해서 써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농업과 관련된 축제, 교육 등 행사 때나 선출직 공직자들의 인사말이나 연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지만, 사회 지도층인 교수, 기업가, 정치인 할 것 없이 농업인들이 모인 자리의 단상에 올라가면 모두 한 목소리로 "농업은 우리의 생명산업이요, 국가 기간산업이며, 가장 중요한 먹거리 산업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하지만, 현실은 그들 중에 "만약 당신의 소중하고 귀한 딸이 농업인과 결혼 하겠다"고 한다면, 흔쾌히 허락 하실 분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쌀 값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비료값·농자재값은 천정부지로…소·돼지값은 회복 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거기에 사료값은 어떤가?

농업인들은 말 한다. "농자 유구무언(農者 有口無言)"이라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입이 있어 말을 해도 돌아오는 답이 없으니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원주농업 발전의 밑거름이 되도록 조성하겠다던 농업안정 발전기금은 100억원 조성 완료시기가 지났어도 미완의 과제이고, 순수한 농업예산이 원주시 전체예산의 10%정도가 되도록 증액해 달라는 농업인들의 요구도 매년 구호에만 그치고 있지 않은가?

39년 전 나는 낡은 자전거로 논두렁을 누비며 4-H회의를 마치고 서낭당 고개 밤길을 내달리던 농촌지도원이었다. 우리나라의 농업의 녹색혁명, 백색혁명 시대, 격동의 농축산물 수입개방시대를 농업과 농촌의 짙은 노을을 가슴에 안은채 몸소 체험했다.

2009년 1월초 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임명받아 원주농업과 농촌발전의 밀알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거침없이 4년 반을 내달렸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읍면단위까지 농업미생물 배양시설을 갖추고 공급 해 주는 일, 이앙기, 콤바인까지 임대해 주는 농기계 임대사업 확장, 도내에서도 가장 늦게 시작한 치악산 한우브랜드 소시모 인증 획득, 지역공동체 운동인 원주푸드 시스템 구축, 도·농상생 미래농업을 향한 도시농업 기반조성, 권역별 농촌종합 개발사업 공모 등 나름대로 열정을 갖고 밀어부친 일들이 그 흔적들이다.

공직을 명예롭게 퇴직한다는 것, 아마 명퇴한 공직자들 중에서 안전행정부의 검증까지 거쳐서 퇴직결정을 받은 사람도 흔치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명예스러운 걸까? 누가 뭐래도 난 우리 후배 농촌지도직·농업직 공무원들의 사기진작과 농업과 농촌을 위해 더 봉사하고 헌신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결단했다는 점을 밝혀 둔다.

또 앞으로도 이러한 양보와 배려의 미덕이 공직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아직도 산적한 많은 농업의 짐들을 이제 다 내려 놓고자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우리지역의 농업과 농촌을 위해 더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또 후배공직자들과 농업인들을 도와 지역발전에 헌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까지 보다는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에도 충실히 할 생각이다.

미래의 농업발전, 그 열쇠는 '도·농 상생'에 있다. 33만 원주시민이 먼저 원주농업을 인정하고 사랑하고 소비해줘야만 지역농업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로컬푸드 운동이요, 지역공동체 운동이다. 도시민을 가장 소중한 농업 고객으로 모셔야 한다.

원주시는 인근 농촌지역과 달리 33만이라는 우수한 소비자 시민들과 함께 농업경영을 한다는 것이다. 도·농상생의 원주농업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세가지 축의 전략과제를 주저없이 집중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 첫째는 친환경농업 확대로 모든 공공급식의 식재료가 지역에서 생산하는 친환경인증 농산물이 공급돼야 한다는 명제 아래 채소, 과일, 잡곡 등 27가지의 전략 품목은 이중 비가림하우스, 시설개선 등을 지원해서 100% 지역산을 공급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완벽한 원주푸드 시스템 구축으로 원주푸드 종합센터 기능을 극대화하여 생산부터 소비까지 일관적 운영체계를 갖춰 나가면서 원주푸드 인증제도를 마련하고, 공익성을 우선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도시농업 확산으로 도시농부를 육성하고 소비자가 참여하는 도심텃밭 운영 등을 조례로 제한해 지역농업과의 상생·조화를 이뤄 나가야 하며, 도시농업은 시대 흐름의 대세라는 점과 앞으로 3~4년 후에는 모든 도시지역에서 실천하고 추진해야 할 새로운 농업의 한 분야가 될 것임을 깨달아 항상 변화의 촛점을 예리하게 찾아가는 농업마인드가 절실히 요구된다.

내 고향 원주농업과 지역사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