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지공예만으로는 생계를 지탱하기 힘들었던 나는 한지로 꾸민 실내공간을 생각했다. 책을 통해 우리의 조상들은 벽체와 방바닥을 한지로 바르고 바닥은 콩댐(한지를 바르고 마지막 칠을 식물성 재료인 콩과 들기름을 혼합하여 만든 도료를 사용해 도막을 형성하는 것을 콩댐이라 한다)하여 사용했다는 내용을 접하고 콩댐에 관심을 가지고 실험하며 조상들의 지혜를 습득하였다. 시공을 하며 느낀 소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 대부분은 콩댐의 추억을 지니고 계시나 어렴풋이 어린 날의 추억으로 기억할 뿐 구체적인 시공방법을 알고 있진 않다. 편리하고 간편한 건축자재들의 홍수 속에서 한지장판은 빛바랜 유년의 추억일 뿐이며 하다못해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을 대표하는 궁궐과 전통한옥에서 조차도 한지장판은 찾아볼 수 없다. 재현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과거의 문화로 잊혀져 버렸다.

20세기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산업사회의 비약적인 발전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특히 모던함을 대표하는 아파트의 주거형태는 마을 공동체 해체와 가족의 단절을 가속화 시키며 급기야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빠르고 편리함을 추구하던 산업사회의 생활방식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21세기 들어 자연의 파괴가 인간에게 미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며 친환경 주거가 새로운 화두로 제시됐다. 환경의 역습을 우려하던 사람들에 의해 자연주의 건축 즉 생태건축의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스레 한지도배와 한지장판을 의뢰하는 분들도 생겨났다.

의뢰하는 분들 대부분은 건강한 주거생활을 추구해 시공을 요청하나 한지와 콩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안타까울 때가 적지 않다.

한 장의 한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백번의 손길이 간다고 해 백지라고도 불려졌던 한지와 그 위에 콩댐을 하기 위해선 콩을 불리고 갈아 들기름과 혼합하여 도료를 만들어내고 7회 내지 9회를 반복하여 문질러 완성하는 한지장판은 현대적 시공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한지로 시공할 때 드는 시간과 노동의 가치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건축의 내부시공 마지막을 장식하는 도배와 장판은 길어야 이틀이나 삼일 만에 시공이 가능하지만 한지로 시공할 땐 그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니 그 비용과 시간을 감당키 벅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비용과 시간의 효율성만을 따진다면 산업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준비가 덜된 것이다.

자연은 수 백 만년의 세월에 걸쳐 우리에게 감동을 가져다줬다. 삶을 보다 건강하게 풍요롭게 살아가려면 느리게 우리의 생활 속에 자연을 끌어안으며 살아가야 한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차를 달릴 때 쭉 곧게 뻗은 고속도로보다 구불구불한 국도나 지방도를 달릴 때 우리는 훨씬 더 편안함을 느낀다. 그

런 정서적 편안함은 경치를 둘러보게 되고 사람을 바라보게 하고 어느새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주거생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자연재료로 집을 짓고 실내를 장식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시간과 노동의 가치. 그 수고로움을 바르게 이해할 때 사람이 보이며 우리의 삶속에 자연을 품을 수 있다. 건강한 삶을 원하는가? 그럼 좀 더 느리게 살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