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물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계곡 물 흐르는 곳에서는 개구리 소리가 물흐르는 소리에 묻혀 들릴듯말듯 귀를 간지럽힌다. 허리를 굽혀 양지바른 곳을 잘 살피면 파릇한 새싹들이 쏙 얼굴을 내민다. 입춘절기가 되면, 소리와 색깔과 맛에서 봄을 느낄 수 있다.

우수가 지나면 본격적인 오감 자극이 시작된다는 것을 귀농한지 8년 만에 알았다. 이 맘 때가 되면 농촌에서는 본격적으로 일손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고추모종, 고구마 싹을 키우는 등 모종을 위한 싹을 틔우고 어린 모종을 보온 온상에서 키운다.

본격적인 농번기를 준비하며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또한 농촌을 잘살게 하기 위한, 혹은 농민들의 소득을 높여줄 목적으로 지방자치 단체에서 지원하는 각종 사업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전년도 가을에 선정돼 봄이 되면 사업이 본격화 되는 새농어촌건설운동, 녹색체험마을, 면소재지 종합정비사업, 권역별 농촌종합개발 등이 그 예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농자재 지원 사업이나 특정 작목 지원사업, 혹은 농업 선진화를 위한 하우스나 저온저장고 지원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 사업이 아무리 많아도 지방정부(원주시)의 지원을 고대하는 농촌이나 농민들의 숫자는 몇 십 배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지원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로또복권 당첨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심지뽑기를 하거나, 원주시의 심사가 끝나 좋은 결과가 발표되길 학수고대하는 농민들 심정은 무엇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원주시 농업 정책 담당자들에게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농촌·농민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을 과감하게 확충해주길 고대한다. 농촌·농업에 지원해주는 각종 사업을 유치하는 것이 로또복권 당첨만큼 어렵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농촌의 공동화와 고령화로 지방자치 시대 농촌은 유권자의 민심을 좌우하는 도심지에 비해 재정투자 순위가 뒤쳐질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이변 시대에 식량안보가 더욱 중시되고 있기에 농촌·농민을 살리는 길이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인식해 주길 바란다.

둘째, 농촌·농민 지원 사업이 지역별·부락별로 균형감 있게 지원되길 기대한다. 지원 사업을 받아 새로운 활력을 얻은 마을에는 지속적으로 각종 지원 사업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이러한 지원 사업으로부터 소외된 마을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더라도 기반 시설이 전무해 평가에서 탈락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책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지원 사업 성과만 중시여기고 그 성과가 좀더 확실하게 나타날 것을 기대한다면, 당연히 각종 지원 사업을 받아 경험이 축적되었고 기반 시설이 갖춰진 곳을 지원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꼭 한 가지 정책담당자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바로 균형발전이다. 우리 마을만 해도 중앙·지방정부의 지원사업을 유치해 본 경험이 없어서 주변 마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

이런 상대적 박탈감과 낙후된 모습은 지역공동체를 갈등으로 몰아갈 염려가 있다. 따라서 각종 지원사업에 선정된 마을에 중복으로 지원해주기보다는 새로운 마을에 지원해 줌으로써 마을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길 바란다.

셋째, 지원사업 규모를 적정규모로 상향해주길 기대한다. 농자재가격 상승은 무섭도록 가파르지만 지원사업 규모는 상승 속도롤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중이다.따라서 십수년 째 지원금액이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원규모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라도 각종 지원사업의 규모를 적정규모로 상향해주길 기대한다.

넷째, 각종 지원사업과 관련한 농자재와 설비 가격들을 관리 감독해야 한다. 지원사업이 되면 농가가 개별적으로 농자재를 구입하거나 설비를 하는 경우보다 가격이 높아진다. 각종 지원사업의 효과가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농자재와 관련한 각종 농자재 업자들의 배만 불리게 된다면 이는 아주 잘못 된 것이다.

그러니 원주시에서 지원해주는 각종 사업의 단맛을 업자들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나, 농촌에 투자될 수 있도록 원주시에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주길 기대한다.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혀 겸손한 마음으로 대지를 바라보며 봄의 생명들을 가슴에 담으며 시작하는 새해 농사, 원주시 담당공무원분들의 지속적 관심과 애정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