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리문학공원 북카페 2층. 최 전 교장이 기증한 자료 중 일부가 전시돼 있다.

원주시가 한 개인이 반평생에 걸쳐 수집한 일제강점기 고서와 희귀자료 등을 무상으로 기증받고도 3년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원주시는 지난 2010년 최희응 전 횡성 청일중 교장으로부터 일제시대 고서와 희귀자료 등 2천885점을 기증받았다(본보 2010년 1월 8일자 1면 보도). 기증자료 중에는 국내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료도, 수 백만원을 호가하는 작품도 여럿이다.

1910년 발간된 '초등역사'를 비롯해 편지쓰는 방법을 기술한 '서한문독습(1914년)', 조선총독부가 펴 낸 '일본구어법 및 문법교과서(1918년)'까지 한자리에 모아 둔 것이 신기할 만큼 하나같이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이다. 책 한권 한권에는 우리가 잊지말고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가 담겨있다.

기증자료 중에는 이밖에도 최남선, 이광수, 현진건 등 문인들의 육필 원고와 유명인사들의 사인, 소품, 화보까지 포함돼 있다.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35년간 최 전 교장이 직접 인사동, 청계천, 전주, 부산, 안동 등 전국을 돌며 수집한 자산이다.

자료의 가치를 알아 본 춘천, 영월, 강릉 등 각지에서 자료기증을 요청했지만 모두 뿌리쳤다. 30여년간 자식 이상으로 품어 온 자료들을 선뜻 맡길 만큼 믿음이 가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끼는 자료들이 자신이 뿌리내리고 살아 온 원주밖으로 나가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기증 당시 최 전 교장은 "난 그동안 충분히 즐겼으니 이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내어 놓겠다"며 평생 모은 자산을 아낌없이 원주시에 기증했다. "기증한 자료들이 사장되지 않고 후대의 젊은이들까지 볼 수 있으면 된다"는 게 최 전 교장의 유일한 기증 조건이자 소박한 바람이었다.

원주시는 기증당시 최 전 교장에게 자료를 분류해 도록을 제작하고 박경리문학공원 내 북카페에 상설전시해 탐방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10년 기간제 근로자를 한시적으로 채용해 분류작업을 하고 북카페 2층에 그 중 극히 일부만을 형식적으로 전시해 놓는데 그치고 있다. 전시된 일부 자료를 제외한 대부분 자료들은 현재 박경리문학공원 서고에 3년째 방치되어 있다.

원주향토문화연구소 박찬언 소장은 "기증받은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도록 하나 만들어 놓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의지의 문제가 아니겠느냐"며 "원주시가 기증 당시 약속한 것처럼 하루빨리 관련 예산을 세워 많은 사람들이 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기증자인 최 전 교장도 "이미 기증한 입장에서 이제와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주위 지인들이나 형제들이 기증자료에 대해 물을 때마다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또 "혹 원주시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방치하는 것이라면 되돌려 주었으면 좋겠다"면서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자료인 만큼 꼭 필요한 곳에 보내 제대로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주시 관계자는 "자료를 기증받은 후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분류 및 도록제작 예산을 신청했지만 다른 사업들에 밀려 늘 예산편성에서 제외됐을 뿐 활용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추경에 다시 예산을 요청할 방침으로 예산이 확보되면 자료를 분석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거쳐 도록을 제작하는 등 많은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