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옷이 돋보일 수 없다' 원칙 고수

중앙시장 2층에는 작은 규모의 맞춤양복점이 있다. 유리 사이로 새어나오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얼핏 봐도 수십년은 돼 보이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서운 눈초리로 양복 원단을 재단하는 노년의 양복기술자는 이미 장인의 경지에 다다른지 오래다.

맞춤양복을 60년 동안 만들었다는 명양복점 명효성(76) 대표에게는 두 세대가 넘었어도 변하지 않은 원칙이 있다. 그 사람에게 맞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명 대표는 "몸이 어떤 형태인지 파악해서 그 사람에게 맞는 옷을 만들어 줘야 해요. 맞춤옷은 몸의 균형을 보완해주면서 옷을 입었을 때 돋보이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명 대표는 손님이 양복점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걸음걸이와 피부색을 살펴보고, 체형은 어떤지, 성격은 어떤지 등을 관찰한다. 피부가 검은 사람에게 지나치게 하얀 옷이나 검은 옷을 입게 한다던가, 활동력이 강한 사람에게 꽉 끼는 옷을 입히는 것은 원칙에서는 어긋나는 일이다. 사람보다 옷이 돋보일 수는 없다는 원칙이기 때문. 이 원칙은 그가 양복 기술을 배울 때부터 몸에 뱄다고 한다.

원래부터 양복기술자의 길을 걸으려는 건 아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 부족한 것 없이 지내다가 해방 직후 아버지가 병사하고 6·25전쟁이 발발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먹여살려야 했다. "충남에서 태어나 양복기술을 처음 배웠습니다. 그때는 매도 많이 맞고 눈치도 보며 기술을 익혔지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싶어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이현국 씨라고 전국복장협회 부회장 하신 분인데 그분을 쫓아다니며 양복기술을 가르쳐달라고 떼를 썼지요. 결국 그 분 소개로 마음씨 좋은 스승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명 대표는 서울의 한 개인양복점에서 숙식을 하며 악착같이 기술을 익혔다. '이렇게 일을 하면 옷이 이렇게 만들어지는데 결과는 이렇게 돼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에 항상 자신이 만든 옷을 손님이 입었을 때를 생각하며 옷을 만들었다고. 손바느질 하다 바늘에 찔려 왼쪽 검지 한 마디를 잃기도 했다. 중앙시장에는 1982년에 가게를 열게 됐다.

명 대표는 "장성 전투복이나 원주시장과 같이 고위공직자 옷도 만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곱추(척추 장애인)를 앓았던 손님이었어요. 가봉할 때 높은의자 놓고 올라서서 거울보고 하나하나 입히면서 옷을 만들었지요. 장애인분들은 비장애인보다 자기 몸에 관심을 더 가지시는 편이거든요.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수십 만벌의 맞춤 양복을 제작했다.

명 대표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고급옷을 만드는 멋진 살롱을 갖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나이도 들고 힘도 부치고 해서 마음에만 간직하고 있지요. 로또라도 당첨된다면 훌륭한 제자들을 양성해 기술을 전수해 주고 싶습니다"고 말하며 옷 재단에 열중했다.　

최다니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