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올 한해 2012년 여름, 올림픽이 아니었으면 그 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아찔함도, 어느새 눈으로 하얗게 변해버린 치악산 마루를 먼발치에서 보는 나의 시선에 금세 잊혀진다.

12장이 빼곡하게 남은 달력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게 어제일 같은데, 이제 12월 한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원주우체국에서 고객만족 및 민원업무를 담당하면서 매주 그렇지는 않지만, 많을 때는 일주일에 3번이나 편지를 보내는 분도 계신다.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보낸 등기우편물이 잘 도착이 되었는지, 예쁘고 특별한 기념우표를 모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하카드는 구입할 수 있는지 편지내용도 아주 다양하다.

전화로 문의할 수도 있는 간단한 사항이지만, 그 민원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편지뿐이다. 원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감자이기 때문이다. 장소와 그 고객이 처해 있는 상황의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가끔 전화로 빠르고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해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답장은 늘 딱딱하기 짝이 없는 공문서 양식인데, 한 번은 직접 손으로 써서 보냈더니 너무 고맙다는 답장이 또 왔다. 우리는 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 SNS 대화, 게임의 하트까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소통의 홍수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지금도 평소 당연한 소통 방법이 차단된 곳들이 많이 있다.

얼마 전 공군부대 내의 우체국으로 출장근무를 다녀왔는데, 이십대 초반 젊은 군인들이 매일 매일 우체국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귀찮지 않냐고 물어 봤더니, 편지가 굉장히 기다려진다고 했다. 예쁘고 큰 소포보다 편지가 제일 기다려진다고…. 그들도 가족과, 친구와 세상과의 소통을 편지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시도 핸드폰을 놓지 않은 지금도 세상과의 와이파이가 뜨지 않는 곳에서 편지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내 부모이고, 자녀이고, 또 이웃이고, 친구며 또 고객일 수 있다.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그들과 마음으로 소통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우체국에서는 8종류의 예쁜 연하카드를 판매하고 있다. 연하카드에 이름과 주소를 적어 우체통에 넣고 상상해보자. 받을 사람이 손꼽아 내 카드를 기다리는 모습을 말이다. 우리는 이미 그들과 소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