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소멸의 법칙"을 일깨워주는 자연의 울림과 내면의 성찰을 권유하는 늦가을 끝자락에서 거울에 투영된 나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문명의 이기를 소유하고 즐기기 위해서, 두달여 남은 한해를 알차고 보람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한 해 동안 기록한 수첩과 가계부를 뒤적이며 꼼꼼히 살펴보는가 하면 가장 느린 걸음을 걸으며 상념에 젖어 보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만족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니 허망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삶이 수학 공식처럼 잘 맞아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뒤엉킨 미로의 실타래가 되어 속 시원히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만의 미성숙된 삶의 결과라고 보아야 할까? 심사숙고 해 보지만 어느 것 하나도 꽉 잡혀지는 것이 없고 허망 할 뿐이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 버거울 때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본다면 어떨까? 원주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며 도심 속 역사문화 공간인 강원감영 사적지를 찾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선조들께서 들려주시는 무언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다 보면 다소나마 위안을 받고 가벼운 마음이 될 것이다.

꺾임 굴절 공간에 설치된 마지막 세 번째 문인 "징청문"의 편액은 세월의 여울에 닦여 고귀하고 기품 있게 빛을 발하며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정치 철학의 덕목과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고 있다. 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을 들어가려면 반드시 "징청문"을 거쳐야 되는데 "징청"이란 "몸과 마음이 맑고 깨끗해서 나쁜 생각이나 탐욕스런 마음이 없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관찰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징청"의 마음가짐으로 들어서야 됨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는 목민관의 이치이고 도리이며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상기해야 할 덕목과 삶의 철학이 아니겠는가? 선화당 안에서는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어진 관찰사의 목소리를 듣고, 포정루에서는 "어진 임금의 정사가 잘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관원들의 모습을 찾아보며 옛 기억의 향기와 자취를 따라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다보면 역동적이고 행복한 원주시민이 되어 있는 참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옛날 옛적 감영에 부임하는 관찰사가 지방수령으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임금님께 신고한 행동강령인 "수령칠사(守令七事)"의 7가지 조목인(농상성(農桑盛), 호구증(戶口憎), 학교흥(學校興), 군정수(軍政修), 부역균(賦役均), 사송간(詞訟簡), 간활식(姦猾息)"의 뜻을 음미해보며 내가 관찰사가 되어보기도 하고 감영 관원들과 속삭이다 보면 그 가르침이 어느새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와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검박하고 절제된 미를 사랑한 조선시대 선비의 취향과 지혜를 찾아 역사에서 배우고, 답을 찾고, 길을 묻는 것은 오늘을 사는 지혜로운 삶의 자세일 것이며 우리 인생의 창고는 풍요로워 질 것이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강원감영을 찾아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선비 정신을 되새기며 선비의 가치 와 멋을, 선비의 지적 활동을 사유 한다면 이 늦가을을 보내는 삶이 조금은 넉넉하고 풍성해 질것이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