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온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빼곡한 건물을 봅니다. 그것들은 네모지고 둥글러져 있으나 모두가 면과 면이 어우러져 있고, 그 면에는 수 없는 선들이 있을 테고 그 선 안에는 셀 수 없는 점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들여다보고 나누어보니 앞에 걸린 '오륜행실도'속의 소나무 위에도 올라 설 수 있네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아 상투조차 올리지 못한 소년의 손에는 서슬 퍼런 도끼가 쥐어져 있습니다. 그 도끼 속에는 아비 잃은 소년의 시린 한이 그대로 들어 있을 테고 그 한이 맹수 호랑이 앞에서도 소년을 뒷걸음치지 않게 하는가 봅니다. 그 호랑이가 바로 아비를 잡아먹은 '웬수'이니까요.

소년은 도끼로 호랑이를 내려 칠테고 배를 갈라 아비의 유골이라도 수습해 양지바른 어딘가에 편히 모시겠지요. 소년에게 있어 아버지는 부드러운 어머니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 가정의 버팀목이었을 테고, 항시 앞서 계신 어른이었을 것이고 나아가서는 왕에게 충성을 하는 신하가 되라고, 친구에게는 믿음을 주는 자로 크도록 가르침을 주는 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소년은 맹수를 압도하는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부모의 말과 행동의 가르침이 바로 '오륜'이고 이것은 우리 조상의 머리 뿐 아니라 가슴 속에까지 깊게 드려진 가치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저에게는 친구와의 약속보다 버스 속 구부러진 허리로 힘들게 손잡이를 잡고 서 계신 어르신보다, 바쁜 출근준비 중에도 청소기를 돌려주는 남편의 마음보다, 내 부모의 늙어가는 지친 숨소리보다, 여덟 살 내 딸아이의 학원 시간이 너무나 약해 보이는 두 다리가, 오늘 볼 받아쓰기 준비가, 예방접종 후 빨갛게 부은 아이의 팔이 제 앞에서 너무나 크게 쿵쿵 울려댑니다.

그러나 TV를 켜면 불안해집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것들이 큰 파도가 되어, 한 교실 배움을 함께 하는 친구에게 왕따 당해 자살했다고, 잘못된 행동을 지적했다 해서 젊은이가 나이 드신 어른에게 폭력을 가했다고, 부부가 성격차이로 이혼을 한다고, 떨어진 성적을 훈계 했다 해서 제 부모를 살해 했다고, 저출산… 했다고.

그 거칠어진 파도가 멈추지 않고 말해줍니다. TV속에서… 내 가족만, 내 아이만, 내 마음만 바라보느라 이렇게 괴물이 된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세상을 이렇게 부숴버렸나 봅니다. 그래서 서 있어야 할 도리 가치들이 모두 작은 점이 되어 숨어 버렸나봅니다.

그렇지만 점이 작다 해서 힘까지 미약하진 않을 것입니다. 제 아이에게 '배꼽인사'를 가르치고 '배려'를 보여주고 '차례'를 함께 지키면서 언젠가는 '오륜'도 알려줘 보고, 그 배움을 아이 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칭찬스티커'로 가득 채워보려 합니다. 그렇게 내일을 준비해 행복한 세상을 설 것이 바로 서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제 아이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그 곳에 기증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