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나 밭에 간다. 발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를 따고 숲처럼 우거진 잎사귀를 뒤져 길게 익은 가지를 딴다. 사나흘마다 몇 알씩 영글어주는 굵은 토마토도 두 개 땄으니 아침 상이 푸짐해지리라. 남편은 오이를 따고 키 큰 잡초들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무더위를 잘 버텨준 쌈채소 잎을 따면서 "고맙다, 덕분에 봄부터 지금까지 잘 나누며 잘 먹었다. 햇볕 잘 이겨내라, 고맙다." 절로 인사가 나왔다.

올해 초 남편은 시청에서 분양하는 주말농장 운영을 신청했고 꽤 높은 경쟁을 뚫고 당첨돼 9평 텃밭을 일구는 행운을 가족에게 선물했다. 도자기 흙처럼 매기 힘든 땅에 처음엔 물을 얻기가 수월치 않아 애태우기도 했다.

다섯 식구가 매달려 일구고 심고 풀뽑고 하면서 자주 땅에 엎드려 있었다. 주변이 치악산으로 둘러싸여 있기는 하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출퇴근에 아이들을 키우는 단순한 생활을 하다보면 맘 먹고 나들이를 가지 않고서야 자연과 벗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해질 무렵 잡초 뽑느라 땅에 조아려 앉아있으면 시원한 바람에 어지러운 생각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찾기도 하고,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 칼싸움하느라 바쁜 두아들의 웃음소리며, 땅콩을 유난히 아끼며 돌보는 딸아이의 탄성이 한 데 어우러져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한 평생 집하나 장만해 보겠다고, 아이들 남보다 뒤쳐지지 않게 키우겠다고 발버둥치는 버거운 생활들을 내려놓고 그 앞에 무릎을 조아리면 이렇게 행복해지는 것을. 낮아지고 비워야하는 삶을 그 작은 텃밭에서 배운다.

간혹 오가는 이웃들을 만나기도 한다. 수박에 반갑지 않게 찾아온 진딧물을 목초액으로 잡아보려 애쓰는 부지런한 부부도 만나고, 뒤늦게 옥수수 모종을 심고도 솥 걸고 옥수수 장사할 꿈에 젖은 유쾌한 아저씨도 만나면서 밭에서 금방 뜯은 상추랑 고추도 나누며 산골짜기에 웃음을 심는다.

잡초가 옥수수 키만큼 자란 밭도 보이고, 이제 이런 저런 추수가 끝난 땅이 아무 것 품지 않고 쉬고 있는 모습들도 보면서 우리네 삶도 이렇듯 작게 품으며 최선을 다하고 또 그렇게 쉼을 갖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야하지 않나 좋은 배움을 얻는다.

원주시에서 여러가지 좋은 사업으로 시민들의 생활이 보다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도록 늘 수고하며 지원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눈에 띄는 화려한 행사와 기관지원 등도 필요하지만 주말농장처럼 각 가정이 오랜시간 정성을 들이며 스스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사업들에 좀 더 관심을 써주면 좋겠다.

아무리 멋진 공연을 준비해도 사는게 바빠서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 사업은 되돌아보아야만 하는게 당연하다.

주말농장에 지원했다가 당첨되지 못한 가정들이 참 많은줄 안다. 텃밭에 가보면 주인을 찾지 못해 잡초가 무성한 땅도 아직 많은데 한 가족이라도 더 이 사업에 동참할 기회를 얻었더라면 원주의 행복지수는 한 뼘 더 자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주말농장 채소들이 힘껏 잘 자라줄 것이고 나역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오이와 가지를 썰어 반찬을 만들고, 호박잎 찐 것과 쌈채 겉절이까지 곁들여 먹은 든든한 아침밥상이 그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마치고 방울토마토 몇 알을 먹으면 나에게 또 초록숲의 힘이 불끈 솟을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