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더위는 묵묵히 견디는 편인데, 올해 여름의 더위는 정말 대단하다. 1994년 원주에서 살기 시작한 첫 해의 더위가 이랬던 것 같다. 폭염을 연구실에서 버티다, 오후 늦게 치악산 계곡을 찾아가 잠시 발을 담구고 있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내의 시장에서 이런 저런 먹거리와 과일을 사서 간단하게 차려 먹고 쉬다 보면 하루가 지나갔다. 그 당시 시장은 모든 것이 있는 장소이고, 맛있는 식당도 근처에 많았고, 원주 시민들의 생생한 기운이 모이고 교류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2012년 시장의 환경은 많이 변해 버렸다. 폭염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인근에 생긴 대형마트의 풍경은 밤 늦게 까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필요한 것이 생각나 다소 늦은 시간에 새로 생긴 대형마트를 가게 되었는데, 대형카트를 몰고 이동하는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무척 많았다.

엄청난 물량과 다양한 제품, 시원하고 깔끔한 공간에 편의성까지 갖춘 대형 마트는 나무랄데 없기는 했지만, 한 편으로 이런 저런 걱정과 미안함으로 공연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다시 시장에 가보았다. 대형마트를 반대하는 어지러운 현수막이 있었으나,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상인들의 정감은 여전하였다.

각종 의류를 수선하는 일만 25년째 하고 계신다는 아저씨 가게에 들러 아버님 바지 수선을 맡기니 어르신 바지는 이러저러하게 고치는게 편하다고 친절하고,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신다. 수선을 맡기고 나서니 40년째 그 자리에서 올챙이 국수를 팔고 계시는 할머니께서 넉넉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시장은 리모델링으로 한결 깔끔해졌고,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착한 가격의 반찬가게들도 여전히 정겨웠다.

200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문전성시 사업단'을 꾸려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문전성시'란 '문화가 살아있는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을 줄인 말이다. 전국의 20여개 이상의 전통시장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그 중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얼마전 서울의 통인시장을 방문했는데, 작은 시장이지만 깔끔한 분위기였고, 시장에서 파는 각종 먹거리를 사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휴게 공간과 화장실 등도 정비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기름 떡볶이 집 앞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고, 친환경 먹거리 메뉴와 반찬을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뷔페식을 절묘하게 결합한 식당에는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아직 활성화라고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었지만, 도심 속 전통시장을 돌아보는 마음은 참 푸근하고 좋았다.

원주시에서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계속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시의 성장에 따른 대형마트의 유입과 지역의 멋과 전통을 유지하는 재래시장이 상생할 수 있는 묘책을 세운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시장은 단순히 대형마트처럼 상품을 사고파는 소비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은 지역의 역사이자 문화적 상징이 흐르는 공간인 것이다. 따라서 일회적인 방안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갖는 시장 활성화 사업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었으면 한다. 원주 시민은 물론 외지인들도 진정한 원주를 알고 싶다면 꼭 방문해야하는 장소로, 오랜 시간 동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지역의 특성과 이야기를 이어가는 생기있는 장소로 시장이 지속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