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UN은 2008년 당시 세계적인 금융위기에서도 안정적인 경영을 수행하는 등 협동조합이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주목, 올해를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정하고 각국에 협동조합 관련 법 제도 정비를 권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1월 26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공포돼 12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융과 보험업을 제외한 삶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민·관 할 것 없이 협동조합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 보고자 다양한 사업이 시도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협동조합도시 서울'을 위한 정책수립 연구용역에 착수했고, 전북에서는 주민에게 협동조합 교육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지역 여건 조성을 도정 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성남과 안산, 시흥, 서울 성북 등 기초 자치단체에서도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정성을 쏟고 있다.

대기업 자본이 지역 풀뿌리경제까지 장악해 그나마 유지해 오던 지역 순환경제의 틀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업유치와 대형 개발사업 추진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지역개발 전략이 더 이상 주민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협동조합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이 얼마만큼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탈리아 북부에 트렌토라는 인구 50만 명의 도농복합도시가 있다. 이탈리아 전체 면적에 2%를 차지하고, 전체 면적 중 70% 이상이 해발 1천m 이상 고지대이다. 이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협동조합. 농업을 비롯해 소비자, 금융, 사회서비스 등 각종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전체 협동조합의 개수는 547개로 인구 50만 중 23만5천 명이 각종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 다양한 협동조합을 설립·운영하고 있다. 협동조합에서 고용한 인구가 1만5천여 명. 지역금융인 신협에서 트렌토 지역 전체 예금액의 65%, 대출액의 61%를 담당하고 있고, 협동조합이 소비자 분야 38%, 농업분야 90%의 시장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는 도시이다.

재정자립도 100%, 이탈리아 중앙은행과 까르푸 등 대형자본이 2009년 6개월 영업 후 포기를 선언하고 물러갈 정도로 지역순환경제의 틀이 완벽히 갖춰져 있는 도시. 협동조합 내에서는 비정규직이 없는 도시. 협동조합 경영자와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최대 3배를 넘지 않는 도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협동조합의 힘이다. 물론 트렌토가 이 전부를 하루아침에 일군 것은 아니다. 100년 넘는 협동조합 운동 역사가 현재의 모습을 가능케 했다. 이제야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너무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협동조합이 이러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원주는 우리나라 협동조합 운동을 이야기 할 때 빼놓지 않는 곳이다. 오랜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와 그 역사를 바탕으로 현재도 활발히 협동조합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협동조합기본법 시대에 협동조합이 가장 활성화될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해마다 원주협동조합 운동을 견학하려 1천명이 넘는 사람이 원주를 찾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이신 장일순 선생께서는 1960년대 중반 고리사채에 뜯기는 농민과 소상공인을 위해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하시면서 협동조합을 통해 "만민이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라고 말씀하셨다.

만민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것은 협동조합 운영 기본원리를 담은 것이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은 자본주의와 시장질서가 갖는 모순에 피해자가 되지 말고 협동조합을 통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지역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를 담은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은 아니어도 협동조합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또 다른 세상'을 만드는 데 유효하게 작용할 것이다.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지 원주에서 협동조합 운동단체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이 협동조합의 길에 함께 할 수 있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