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자(60) 여사는 지난 1959년 강릉시 노암동에서 태어났으며, 21살이었던 1973년 박종목(65) 씨와 결혼했다. 당시 박 씨는 촉망받는 권투선수였고 프로선수의 꿈을 위해 링에서 피나는 연습을 했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남편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 여사는 연습 중 피를 흘리는 남편을 볼 때면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는커녕 '어서 일어나 다시 연습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베트남전에 참가하며 부부의 삶은 고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박 씨는 베트남전쟁 중 야간 보초를 서다 베트콩 유탄공격에 부상을 입게 된다.

파편이 몸속 깊이 박힌 것. 상이군경 5급을 인정받아 전역한 박 씨는 차마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못다 한 꿈을 위해 원주복싱체육회 사무장으로 근무하면서 제자를 양성했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프로권투가 프로야구에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남편 수입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 여사는 생계를 위해 포장마차를 운영하게 됐고,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남편의 못다한 꿈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악재는 계속됐다. 박 씨는 젊었을 때 무리한 운동 탓에 온몸이 병들어 있었다. 당뇨 탓에 인슐린과 경구복용 약물을 복용하며 치료하는 가운데 뇌경색과 고엽제 버거병으로 손가락 3개, 발가락 한 마디 절단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다.

퇴원 후 재활치료와 운동으로 호전되기는 했으나 아내 시중을 받아야 했다. 병중에도 권투에 집착하는 남편에게 이 여사가 물었다. "권투가 그렇게 좋아? 가정보다 그깟 권투가 그리도 좋아?" 눈물을 흘리며 묻는 아내에게 박 씨는 냉정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어, 권투는 내 운명이야" 아내보다 권투가 더 좋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분노하면서도 안쓰럽게 생각했다. 이 여사는 "남편은 사나이에요. 겉으로 멋있는척 하는 사내가 아닌, 꿈을 향해 도전하는 진정한 사내에요"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생계유지뿐 아니라 자녀교육에도 매진했다.

아들 기현 씨는 청주대를 휴학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 현재 중개인영업소 대표로 근무하고 있다. 딸 소영 씨는 2005년 수원대를 졸업 후 현재 숙명대학교 대학원 3학년에 재학하고 있으며, 인간문화재 23호 김죽파 가야금 및 병창 이수자이기도 하다. 소영 씨는 "유년시절 아버지가 미웠어요. 하지만 존경스러웠어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눈물이 흘렀어요"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남편 내조와 자식 양육과 더불어 지역주민과도 잘 어울렸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원주국화라이온스 회원으로 봉사하면서 불우이웃과 독거노인을 방문해 말벗과 음식봉사, 목욕봉사 등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원주시 주부교실 회원으로 1998년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 여사는 "부부란 서로 믿고 사는 존재입니다. 요즘 젊은 여자들은 남편을 위해 내조하는 일이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희생이 아닙니다.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게 아내의 역할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지난달 27일 대한민국 상이군경회가 주최한 '제11회 장한 아내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