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 이겨내고 지금은 숲속이 요란스럽다. 따스한 기온으로 그동안 움츠리고 잠자던 모든 것들이 기지개 켜고 땅 밖으로 나오려고 안달을 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텃밭에다 씨앗을 넣지만 난 씨앗을 포트에 넣어서 싹을 틔운 다음 본 밭에다 옮겨심기를 한다.

한 톨의 씨앗이라도 헛되이 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난 이 봄을 많이도 기다렸다. 강원도의 산골은 겨울이 길기 때문에 푸른 채소가 매우 귀하다. 마트에 가면 없는 게 없지만 내 손으로 벌레 잡아가며 기른 채소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 작물이 가진 본래의 맛을…. 직접 길러서 먹어보지 않고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된다. 이렇게 사람이 먹을 채소야 당연히 길러서 먹는 것이 시골살이 묘미지만 난 내가 더 좋아하는 게 따로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날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느끼며 산다는 게 삶의 활력소가 된다. 이제 머잖아 앞산에 봄꽃이 듬성듬성 꽃을 피울 것이고, 나무에서는 새 잎이 각자의 색깔을 자랑하며 앞 다퉈 피어날 것이다. 우리 집 정원에선 제일 먼저 노루귀가 피고, 할미꽃들이 피고, 장독대엔 민들레가 핀다.

무스카리의 보라색이 가장 눈에 띈다. 산자고의 가녀린 수줍음도 얼핏 보면 눈에 띄지도 않을 작은 꽃을 피우고 날 부른다. 빨리 와서 보아 달라는 듯. 오월이면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붓꽃이 우리 집 정원을 보라동산으로 만들 것이며, 붓꽃에 질세라 뒤이어 노오란 꽃창포가 어느 한 공간을 다 채울 것이다.

샛노란 창포가 피면 작은 산골에 축제라도 열린 듯 산뜻함을 가져다 준다. 철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들이 내 유년의 꿈을 채워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배운다. 자연이 내게 준 무언의 질서와 소중함도 함께 말이다.

이제 표고버섯이 봉긋봉긋 터져 나오고 밭 언덕엔 달래가 소담스럽게 올라와 우리 집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밥 앉혀놓고 작은 바구니 옆에 끼고 나가면 산나물이랑, 두릅, 표고버섯 따다가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이고 산나물은 데쳐서 조물조물 무쳐먹는 맛에 시골살이는 풍성해진다. 어찌 보면 초라한 밥상이겠지만 난 약이 되는 밥상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