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야은(冶隱) 길재(吉再) 회고시가-
　
내 기억으로 초등학교 때 배운 것 같다. 제대로 썼는지 모르겠다. 이 시를 쓴 이유는 내 나이에 걸 맞는 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나이 60을 넘어 올해 회갑이 되었다. 오백년은 되지 않았지만 인간의 나이에 비춰볼 때 비슷한 것 같아서 비교해 본 것이다. 그리고 문득 이 시가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봉산동에 살았다. 옛 경찰서가 있었고 세무서, 교육청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름이면 봉천내에서 멱을 감고 개울 건너 개운동 물레방아 있는 논으로 메뚜기,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지금 KBS방송국 건물엔 아마도 법원이 있었고, 앞에는 우체국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이면 봉천 내 개울에서 썰매도 타고 스케이트 시합도 열렸다.

시내에 들어서면 아직도 옛 모습이 남아있다. 건물만 바뀌고 도로나 도시 모습은 그대로다. 하지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오래 살아온 나조차 여기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많이 변했다. 학창시절 친구들 중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는 몇 되지 않는다. 함께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고 멱 감던 친구들, 개울에서 수영을 가르쳐주던 형들이 그립다. 먹을 것 없고 입을 것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남아있는 친구들과 가끔 옛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되살려 보기도 한다. 청년이 되어서 세상을 어느 정도 알게 됐을 때는 이 세상을 한번 움켜쥐고 돈 많이 벌고 잘 살고 싶었다. 나이 먹는지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향해 살아온 것 같다.

막상 회갑을 맞고 보니 지난 과거가 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 특히 어려운 시절 가족의 건강을 지키면서 아낌없는 내조를 해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부모님 모시면서 그 많은 제사 다 챙겼고 시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하나 둘 모두 출가 시켰다.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아내인 것 같다. 탈 없이 커줬고 학원 한번 안보냈는데 열심히 공부해 준 아이들에게도 고맙다. 사회에 나가 자기 직분을 다하고 있다. 부모님께는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 용돈도 좀 두둑하게 드려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 항상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 뿐이다.

지금 내 주위에는 옛 건물도, 옛 사람들도 많이 보이질 않는다. 회갑을 맞이하니 새로운 인생을 써야 될 것 같다. 난 개운동에서 조그만 바이크 샵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날 손님 한분이 오셨는데 헬멧과 유니폼, 썬글라스, 마스크를 착용해 외관상 30~40대로 보였는데 헬멧과 썬글라스, 마스크를 벗으니 60이 넘은 아줌마였다.

대뜸 하시는 말씀이 "사장님 인생은 60부터입니다. 어때요? 멋있습니까?" 하길래 나는 "정말 멋있습니다"라고 했다. 진심이었다. 얼굴이 예뻐서 멋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용기와 패기가 멋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바이크는 그 분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리라. 그렇다. 옛추억도 추억이지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과 함께 다시 인생을 시작해야 되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어느 분 말처럼 지금까지 연륜과 경험을 토대로 내 곁에 있는 동반자와 함께 사회에 봉사하면서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 인생은 60부터다. '회갑 61은 숫자에 불과하다' 외치면서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