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이 지난달 개관했다. 그런데 원주출신의 최규하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서거한지 5년이 지나도록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위원회 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있다. 최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지난 2000년 지역인사들을 중심으로 기념사업회가 꾸려졌고, 기념관 건립을 위해 30억원을 목표로 모금운동이 전개됐다. 그러나 모금액이 약 2천만원에 그쳤고, 기념사업에 대한 반대여론이 제기되면서 기념사업회 활동은 중단됐다.

그러다가 지난 2006년 최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재경 출향인사들을 중심으로 기념사업 추진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 원주시장이었던 김기열 시장도 기념사업 필요성을 공감, 실무위원회를 구성하고 시장이 위원장을 맡는 등 의욕을 보였다. 당시 원주시는 최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위한 연구용역, 기념관 건립, 추모 학술대회 등 구체적인 기념사업 방안까지 제시했었다.

그러나 2010년 원창묵 시장이 취임하면서 실무위원회는 흐지부지 됐다. 기념사업은 민간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최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공과에 대한 다양한 시각 때문에 원주시가 주도하기에는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비용을 지원하는 등 행·재정적으로는 뒷받침 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경 출향인사들이나 기념사업에 관여했던 지역인사들은 김 전 시장 재임 당시 약속한대로 원주시가 기념사업을 주도해야 한다며 방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올해도 기념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태로 계속 시간만 끄는 것은 옳지 않다. 원주시가 앞장서 추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설문조사를 통해서라도 기념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최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상황이 다르다.

또한 원주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른 사람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정리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문제는 기념사업을 더이상 미루게 되면 자료 수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최 전 대통령 주변인물에 대한 구술조사가 필요한데, 대통령 재임 당시 국무위원 등 주변인물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기념사업이 지연될 경우 자료수집이 부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 전 대통령은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청빈한 삶, 공직자의 사표가 되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정권을 이양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고 해도 인간 최규하에 대한 기록 만큼은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부끄러워 하거나 망설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