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우리 여성의 지위는 전반적으로 매우 낮은 상태였고, 여성의 권리를 찾는 노력은 힘겨웠지만 사회적 공감을 확대할 수 있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고, 이제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고 당당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최근 우리나라는 앞서가는 여성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모델이 되고 있으며,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많은 정책을 입안하고 확대해 가고 있다. 성별영향평가, 성인지 예산, 일과 가정 양립 정책, 여성친화도시, 다문화여성에 대한 정책에 이르기까지 최근 전개되고 있는 여성정책의 항목들은 성평등한 사회를 구축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정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여성정책의 나열과 실행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고, 때론 실망스럽기도 하다.

한편에서는 이제 여성들이 못할 일이 무엇인가라며 자족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우리 여성의 지위는 2011년 세계경제포럼이 제시한 바에 의하면 135개국 중 107위로 부끄러울 정도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여성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가 다른 어느 시기보다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서구 사회에서도 90년대 여성운동에 대한 사회적 반격(backlash)이 진행되면서 여성정책이 보수화되거나, 안티 페미니즘의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어가는 과정이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도 반 여성정책 또는 안티 페미니즘을 내세운 남성 모임이 만들어지고 온라인 공간에서 목소리를 확대해 가거나,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서 오히려 성평등에 대한 냉소적 움직임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추측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최근 여성가족부의 행보는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성희롱, 성폭력과 같은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여성 일자리나 보육에 대한 획기적 정책 수행도 부족한 상태에서, 가요 심의나 게임 대책으로 내놓은 '셧다운제' 등으로 비난을 자초하였다. 여성가족부가 되면서 여성, 건전 가정, 청소년 대책을 오락가락하면서 정책의 방향과 정체성을 상실한 모습에 대해서는 여성 내부에서도 비판과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중앙정부가 제시한 방향에 따라 다양한 여성정책을 실행하고는 있지만, 정작 구호와 항목만 있을 뿐 실제적인 예산과 실행력을 담보하여 지역 여성의 삶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성정책을 의례적인 시혜 정책 정도로만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단체장의 시각도 영향을 미친다.

한편 젊은 세대는 남녀관계에서 보다 진보적이고 평등한 방향을 추구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여성문제에 대해 매우 미묘하고 긴장된 대립관계를 보인다. 대학에서만 보더라도 여학생들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남학생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만 가고, 취업을 위한 경쟁 속에서 상호간의 반목과 대립이 커져가고 있다.

지난 10년 이상 논쟁되어온 '군가산점제'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평등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공감하고 수긍하던 남학생들이 무조건 남성들이 억울하니 필요하다는 주장이 늘어나는 것도 최근의 현상이다. 그러면서도 남학생들은 이상적인 결혼에 대한 기대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여학생들은 변화하지 않는 남성과의 결혼에 대한 기대를 접고 취업만을 향하는 엇갈린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청년 세대의 취업난이라는 현실이 여성문제를 뺐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으로 이해하게 하고 공감과 조화를 향한 남녀관계를 실종시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여성정책은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남녀가 함께 조화롭게 살기위한 성평등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이고, 그 혜택도 남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이는 여성정책의 기본이다. 이제 여성정책의 내실있는 질적 정립의 방향을 점검하고, 불필요한 반목과 대립을 넘어 평등 문화에 대한 공감을 확대하고, 조화롭고 성숙한 젠더 파트너십을 조성하기 위한 성찰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