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는 날은 왜 그렇게도 추웠는지, 마을 공동우물에서 절인 배추를 씻어 머리에 이어 날라 넓직한 마루 위에 쌓아 올리면 맨 아래 배추는 얼어서 나중에 떼어내기도 힘들었어요. 이 계절이 되면 쌀쌀한 바람과 함께 저절로 그리워지는 기억입니다.

원주에 살면서 가족나들이 삼아 마을 축제에 찾아갈 기회가 많습니다. 이번에는 온가족을 설득해 회촌에 갔습니다. 땅 속 김장축제에서 막 담은 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막걸리 한잔 하고 싶은 남편이 제일 먼저 뒤따라 나섰고, 이웃학교와 축구경기 하느라 배가 고팠던 첫째는 '보쌈 사줄게' 라는 한마디에 이미 차에 올라타 있습니다.

여름에 원주사랑걷기를 하면서 회촌 마을회관에 도착하기까지 발 아프게 걸었던 그곳을 스산한 초겨울에 다시 찾게 되는 감회는 새로왔습니다. 만둣국이며 보쌈까지 모두 엄마같은 어르신들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가득 담아주셨습니다. 그 진한 맛이 꼭 친정집에 와 있는듯한 정감에 빠졌습니다.

그때 낡은 털고무신이 왠지 잘 어울리시는 어른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그 분은 축제장 여기저기에 웃음을 뿌리고 계셨습니다. 축제가 찾아오는 사람들만이 아닌 이 마을 분들이 주인이 되는 것 같아 보는 이들도 행복했습니다.

막바지 공연이 시작되면서 구수한 민요 한자락에 옹기종기 무대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해금연주, 소고춤을 출 때 어설픈 추임새나마 "잘한다"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울패'의 사물놀이가 시작됐는데 털고무신 할아버지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셨습니다.

방금 전까지 음식 장사를 거드시던 멋쟁이 할머니도 함께 하셨습니다. 저도 아들녀석 손잡고 나가 추위에 움츠렸던 온몸을 펴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 아가씨 할 것 없이 구경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놀이패와 하나가 됐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맨처음 춤을 추던 그 할아버지 손에 꽹과리가 쥐어진 이후였습니다. 장단이 남다르시더군요. 흥에 겨워, 애간장을 녹이며 춤추는 사람들의 입에서 얼씨구 절씨구 탄성을 자아내는 멋이 있었습니다.

'매지리'하면 농악에 제 맛을 아는 어르신들이 사는 곳이라서인지 '참된 놀이를 맛보는구나'하는 생각에 신나고 꿈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매지농악회장님이랍니다. 그분의 감투보다 마을을 지키며 뼈 속에서 우러나오는 흥으로 귀한 문화를 일궈가시는 분을 직접 뵈었다는 게 감사했습니다.

바라건데 내년 회촌마을 땅 속 김장축제에는 움츠린 몸 녹일 자그마한 모닥불이 있었으며 좋겠고, 음식 만드는 어르신들도 장단에 맞춰 한판 신명나게 놀 수 있도록 젊은 애기엄마들이 설거지 봉사를 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저도 딸아이도 거들어드리고요.
김선경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