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농업은 한마디로 1990년대부터 추진되어 온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의 체계 안에 있습니다. 최근 한미 FTA 등으로 대표되는 전면적인 개방화는 어쩌면 개방농정이라는 흐름 속에서 예견되어 있는 수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와 경쟁하는 농업, 돈 버는 농업, 수출농업'이라는 MB정부의 슬로건도 성장우선, 효율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의 이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편 우리 농업은 전면적인 시장 개방화 속에서 지역간 격차문제, 환경문제, 식품안전문제,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 농촌 인력의 고령화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방농정의 이념(성장주의, 효율지상주의)으로는 농업의 경쟁력 강화는 커녕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농업과 그 주변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며 역사적 경험입니다. 시장지향적 개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면 농업에서의 환경성이나 사회적 형평성을 충분하게 고려하기 힘들고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못해 종국에는 사회발전도 어려워 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국제사회의 역사적 경험입니다.

비슷한 예가 필리핀입니다. 필리핀은 80년대만 해도 세계적인 식량수출국가였습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잘 알려진 바나웨(필리핀의 계단식 논)에서 생산되는 쌀은 필리핀 주민이 먹고도 남아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필리핀의 식량사정은 어떻습니까?

지속적인 개방농정의 결과 필리핀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은 몰락했으며, 몬산토와 같은 국제식량무역상들이 필리핀 식량공급을 틀어쥐고 있어 점차로 쌀 가격을 인상시켰습니다. 그 결과 필리핀의 대다수 서민들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쌀을 사기 위해 하루 반나절 줄을 서서 쌀 배급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였습니다. 바나웨는 쌀을 만드는 논이 아니라 관광객들의 눈요기 감으로 박제화된 채 쓸모 없이 버려졌습니다.

이미 우리의 현실도 필리핀과 같은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의 이념아래 효율중심, 성장중심의 농정은 환경문제, 식품안전문제, 지역간 격차문제 해소에 실패하여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수많은 농업자금을 농업, 농촌에 투입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 악순환구조를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이에 한국농업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농정의 목표가 효율중심의 농업경쟁력 강화가 아닌 환경보존과 식품안전을 양 날개로 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과 안전한 푸드시스템 구축'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농정의 이념은 과거 70년대에 녹색혁명으로 대표되는 생산성 중심 시대, 90년대 개방농정으로 대표되는 경쟁력 중심 시대, 2000년대부터는 환경과 안전한 먹거리로 대표되는 지속가능성 중심시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즉 생산력 → 경쟁력 → 지속가능성으로 농정 이념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변화 즉 화살표는 대체가 아니라 확대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속가능성이 농정의 중요이념이라고 해서 생산력이나 경쟁력을 무시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기에 생산력 이념에서 이후 경쟁력이 보태지고 지금은 지속가능성이 보다 중요한 이념으로 보태진 것이라고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농정의 대상에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 농정의 대상은 농민, 농업, 농촌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즉 생산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국민농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농정의 대상도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를 포함하는 미래세대로 바뀌어야 합니다.

환경보전과 식품안전을 기초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생산자, 안전한 먹거리에서 건강한 생활을 보장받는 소비자 그리고 깨끗하게 보존된 자연환경은 현세대와 미래세대 모두를 위한 한국 농정의 나아갈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