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보면서 가을의 문턱에 있음을 느낀다.

80년대 초반 어느 가을, 내 바로 위 형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온 밤을 지새우는 풀벌레소리와 함께 잠 못 드시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의 가을…. 그토록 여름 내내 푸르도록 강성했던 아버지의 어깨는 아침에 내린 서리 맞은 이삭처럼 맥없이 늘어져 있었고, 아들을 보내고 동쪽 하늘을 한참이고 바라보시며 눈물을 애써 삼키던, 붉게 물들었던 깊은 눈을 잊지 못한다.

당시 태평양 넘어 먼 이국땅에서 보내온 형의 편지가 도착하는 데에는 통상 열흘이 넘게 걸렸고, 서너 달에 한번 씩 걸려오는 전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감이 좋지 않거나 끊어지기 일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유학생에게는 전화하기가 쉽지 않았고, 어쩌다 고국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전화기 앞에서 1∼2시간씩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어떠한가. 손바닥보다 작은 핸드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통화할 수 있음은 물론 내가 쓴 글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달돼 즉각 답이 오는 시대가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세상이며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대면적 접촉으로만 이루지는 구시대적 낡은 소통의 시대가 가고, 손안에 든 핸드폰으로 전 세계 몇 십만 명에게 동시에 소식을 전하고 전해 듣는 다자적(多者的) 소통의 새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1:1'소통뿐만 아니라 '다(多):다(多)'소통에 알맞은 수단을 제공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의 시대에 몰입해 가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자기 자신이나 상대방을 알리기 위해서 개인 매체인 카페, 블로그, 트위터, 싸이월드, 미투데이, 페이스북 등을 이용하면서 온라인 인맥이 더욱 활성화되자 세상은 좀 더 좁아지고 조밀해지고 있다.

자신의 책상 앞에서, 아님 길을 걷다가도 알리고 싶은 소식과 메시지를 생산하고 재생산해 전파 할 수 있다. SNS는 사회적요소와 개인이 결합되는 것이다. 개인이건 단체이건 집단이건, 정당이건 간에 자신을 공개한 사람과 자신이 연결되면서 상호간의 요구, 지식, 사업, 학습이 연결되고 해결되고 친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다른 어떤 서비스보다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앞으로 더욱 조밀해지고 발전하게 될 SNS는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이를 활용해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인의 사생활 침해로 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악플에 의한 연예인 자살, 프라이버시 침해 등 개인적인 피해 사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SNS는 점차 가공할 만한 사회적 위험요소로도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짧은 문장의 정보가 급속히 퍼져 가는 네트워크상의 '주목받기'에 혈안이 돼 있는 현실은 SNS에 내재된 어둡고 해로운 단면이다. 사이버 공간의 네트워크가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위장이 아닌 진실과 신뢰에 바탕을 두고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면서 소중한 인연을 맺어야 한다. 그래야 온라인상에서도 자연과 같이 늘 변하지 않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다.

한바탕 소나기가 퍼붓던 여름이 지나가고 삶의 도정에서 그리움으로 출렁이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길게 늘어진 햇살이 살며시 파고드는 오후 사철의 무거운 외투를 벗어버리고 홀연히 떠나신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어진다.

'아버지 잘 계시지요. 묵은 그리움에 망망하게 먼 하늘만 보시던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어디든지 전하고 답이 오는 이 시대에 왜 응답이 없으신지요…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