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뒤적이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돼 간다. 이 녀석이 올 시간이 됐는데, 기다려진다. 잠시 후 2층 철 계단을 콩콩거리며 올라오는 소리가 난다. 정확히 12시다. 잠시 후 사무실 문이 열리고 "원장님 밥 먹어!"하고 버럭 소리 지른다.

도대체 이 녀석은 언제나 반말이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매일 정확히 12시에 "원장님 밥 먹어"를 반복하는 녀석. 제 밥을 챙기기 전에 원장 밥을 걱정해주는 녀석. 이렇게 예쁘고 마음이 따뜻한 녀석을 세상은 장애인이라고 이름 짓고 2급이라고 등급까지 정해 놓았다. "원장님 뭐해?" "이건 뭐야?" 이것저것 한참을 참견하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니 앞장서 내려간다.

이 녀석에게는 밥이 참 중요한 모양이다.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에 원장을 포함시켜주는 녀석이 난 참 고맙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한 예쁜 아이들 30명과 하루의 거의 반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자기가 먹으려고 주머니에 깊이 넣어둔 사탕이 더운 날씨와 체온으로 반쯤 녹아버렸는데 그것을 내 손에 꼭 쥐어주는 녀석이 가슴 메이게 고마워서 당뇨가 있다는 것을 잠시 있고 그 아이 보는데서 맛있게 먹는다.

내가 일하는 서진복지원은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다. 직업재활시설 중에서도 장애인근로작업장이다. 사회복지를 모르는 분은 잘 모르겠지만 근로작업시설은 장애인들에게 자활을 지원하기 위해 근로를 제공하고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해주는 복지시설이다.

엄청나게 좋은 복지시설이고 정책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문제점이 만만치 않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수립만 해 놓으면 무엇을 하겠는가. 사회 환경이 곳곳에 벽을 쌓고 머릿속에 편견들로 가득해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지 않은가. 금년 1월부터 8개월간 복지원을 운영하면서 많은 좌절과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

우리 근로 장애인들은 주로 지적장애인이다. 사실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좀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직업재활시설도 마찬가지지만 일감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그나마 주어지는 일거리는 채산성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근로자들이 타 업체와 경쟁한다는 것은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같은 선상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다. 정책을 만들었으면 거기에 맞는 일거리도 개발해 주어야 옳지 않을까?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제도가 있기는 하다. 제도가 있으면 뭐하나, 사줘야 말이지. 겉만 그럴듯한 정책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지급한다는 것 자체가 법인의 전입금이 없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법인도 전입금을 감당하기 위해 수익사업을 하지만 제도적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 봉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각종 장애인단체가 많기도 하다. 진심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혹 장애인들을 앞세워 이권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없으면 좋겠다. 시설을 운영하는 분들도 장애인복지를 위해서 아름다운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또는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야 없겠지, 그래서야 어디 세상 슬퍼서 살겠는가.

해맑은 눈으로 마주보는 우리 근로자들을 보면 왠지 생각이 많아진다. 매일 단순작업을 여덟 시간 씩 반복하며 세상의 편향된 시선과 맞서 살아가야하는 이 아이들이 저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성하지 않은 몸으로 세상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어떻게 비장애인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으라고 생활전선으로 내 모는가.

명절이 다가오는데 참 마음이 무겁다. 떡값 한 푼 줄 수 없는, 아니 봉급이라도 제때 줄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내 자신이 참 한심스럽다. 우리 아이들이 돈 버는 아이들이라고 어느 누구도 도와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이 버는 몇 푼으로 서너 식구가 살아가는 집이 대부분인데.

작업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아이들과 실없는 농담도 나누고 몇 놈 등 두드려주고 나면 마음이 참 평안해진다. "원장님 오늘도 걸어왔어? 원장님 차 없어?" 버스타고 다니는 원장 걱정해주는 이 순수한 아이들이 있어 참 행복하다. 이놈 눈에는 버스타고 다니는 원장이 안 돼 보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