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봉욱 영월고 교사

1. 들어가며

1910년 조선의 주권을 강탈한 일본은 원활한식민 통치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였다. 헌병경찰과 같은 폭력적 억압부터 조선 민족의 분열을 꾀하기 위해 사회 전 분야에 친일파를 육성하기도 하였다. 독립 운동에 대한 탄압은 물론이고 민족적인 색채와 성향을 보이는 사소한 것들이라도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식민통치를 위한 방법들 중의 하나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었다. 억압과 탄압의 통치방식은 3.1운동과 같은 전민족적인 저항을 불러 오게 되므로 조선인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부정하고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체념의 논리를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래 글에서는 일제의 조선 역사에 대한 왜곡 과정과 주장들을 살펴 보고, 이에 대응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 연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일제의 조선 역사에 대한 왜곡

수천 년을 단일 민족으로 찬란한 문화와 고유한 언어를 가졌음에도, 저들은 조선의 고대사를 묻어버리고 역사를 날조하여 기득권을 주장하며 자주할 능력없는 야만족으로, 일본의 기득권은 대체 무엇인가! 그들이야말로 몽매무지한 야만족으로 유구한 우리 문화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눈을 뜨지 않았는가.
- 늙은 주정뱅이로 변한 이상현의 독백, 토지 5부 4권 79페이지 -

1) 식민사관의 형성 과정
일제가 한국 침략과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사관을 식민사관(植民史觀)이라 한다. 한민족의 자주적인 역사 발전을 부정하고 한국사에서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민족의식을 말살하려는 역사관을 의미한다.

일제의 한국사에 대한 왜곡은 일제 식민 통치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식민사관에 입각한 한국사연구는 일제 식민통치기간 중에 한층 교묘하게 다듬어지지만, 그 뿌리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일제가 조선 침략을 준비하고 실행해 가는 과정에서 확립되었다. 특히 20세기초 일제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그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논리의 틀을 만들어나가게 되는데 일선동조론, 타율성론, 정체성론이 핵심적인 논리였다.

국권피탈 이후에는 총독부가 고적조사·구관제도조사(舊慣制度調査) 등 여러 사업을 실시하여 식민 통치에 필요한 한국의 역사·지리·풍속·법제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이를 타율성론·정체성론·일선동조론 등 식민사관의 주요 논리를 입증하는 데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1916년 발간한〈조선반도사 편찬요지〉에 실린 것처럼 일제는 "조선인은 다른 식민지에서의 야만반개(野蠻半開)의 민족과 달라 독서속문(讀書屬文)에서 문명인에 떨어지는 바가 없다"고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문화전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당시 박은식이 중국에서 지은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국내에 들어와 널리 읽히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었기에 일제는 서둘러 식민사관에 토대를 둔 한국사의 재구성 작업을 진행시켰다.

1915년 총독부 중추원 내에 편찬과를 설치하여 미우라·이마니시·구로이타 3명을 촉탁으로 조선반도사 편찬에 착수했다. 이후 3·1운동으로 독립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조선사편찬이 시급해지자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를 1925년 정무총감을 회장으로 하는 독립관청으로 확대하여 조선사편수회를 설립했다.

조선사편수회는 식민사관에 입각한 체계적인 조선사의 정리와 편찬을 추진하여 1931년부터 부분적인 인쇄에 들어갔으며, 1937년에는 전35권 2만 4,000쪽에 이르는 〈조선사〉를 완성했다. 편년체로 기술된〈조선사〉는 외관상으로는 모든 사료를 망라하여 서술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식민사관에 입각해 많은 취사선택이 가해졌고, 편찬에 동참했던 조선인들의 반대의견은 묵살되었다.

한편 일제는 조선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사료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해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각종 고기록과 문서류의 수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이는 한국의 사료를 탈취하여 한국인의 사료 접촉을 막고, 사료를 식민사관에 입각해 취사선택하여 조선사를 편찬하기 위한 것이었다.

2) 식민사관의 대표적 논리들

가. 일선동조론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고 하니, 내 조카가 조도전대학 사학과에 다녀요. 수재지요. 그 아이 말이 일본인과 조선인은 혼인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피를 섞어서 조선인이 없어져야 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중국은 워낙이 인구가 많아 어렵겠지만 조선쯤이야 가능한 일이라나요? 서양 역사에서 보면 알레기산다 대왕도 그 땅을 정복하면은 그 땅에서 반드시 제 나라 남녀를 데려가서 씨를 뿌렸다는 거예요.”

- 서희와 용정의 일본인 상류층 부인들의 만남 중에서, 토지 2부 3권 225페이지 -

4C 신공왕후가 정벌 후 세웠다는 임나일본부. 하지만 일본이라는 명칭은 8세기 이후에 등장한다.
일선동조론은 한국과 일본은 외국이나 이민족이 아닌 일본에서 갈라진 같은 민족이며 일본은 한 핏줄인 한국을 만주·몽골·중국의 침략에서 보호하고 융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선동조론을 제기한 대표적인 학자는 호시노로 그는 천황가는 과거 한반도에서 넘어온 왕이기에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본래 한 나라이며, 조선인과 일본인은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비슷하므로 한반도를 다시 천황가의 영토로 편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신공황후의 신라정복설, 임나일본부설도 일선동조론의 주요 근거가 된다.

일제는 국권침탈 직후 일제 관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역사지리〉의 임시증간호에 태고부터 국권침탈까지의 한일관계를 다룬 조선특집을 내었다. 여기서도 호시노는 ‘한일병합은 일한동역(日韓同域)의 복고’라고 강변하며 국권침탈을 합리화하였다. 일선동조론은 3.1운동 이후 다시 강조되는데 당시 기다는 〈일한양민족동원론 日韓兩民族同源論〉이란 글에서 조선인의 독립운동이 한일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일제의 조선지배는 정당성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일선동조론은 일제의 침략과 동화정책을 합리화시키는 논리적 근거로 1930년대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정책의 역사적 방편으로 이용되었다.

나. 타율성론

타율성론은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외세의 간섭과 압력에 의해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으로 만선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선사관이란 만주사를 중국사에서 분리시키고 한국사와 한 체계 속에 묶음으로써, 중국의 만주에 대한 주권행사를 제한하는 역사적 논거를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사를 만주사에 종속된 역사로 파악함으로써 한국사의 독자적 발전과 주체성을 부정하였으며, 이후 타율성론으로 발전해갔다.

타율성론은 한국의 수천 년 역사가 북으로는 중국·몽골·만주와 남으로는 일본 등 외세의 침략과 간섭 속에서 비주체적으로 전개되었다는 가정하고 우리 역사의 자율적 요소나 대외투쟁에서의 승리를 과소평가하거나 감추며 타율적 요소를 한국사의 주요 특징으로 본다. 식민사학자들은 한국사의 주체적 형성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단군신화에 대해서 황당하다는 명목으로 실제성과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사의 시작이 기자(箕子)·위만(衛滿) 조선, 한4군 등 중국지배세력의 식민지에서부터 출발했으며, 남으로는 신공황후의 남선정벌을 전후로 하여 임나일본부가 설치되어 일본이 수세기 동안 남선일대를 지배했다고 한다(임나일본부설). 식민사학자들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고대사뿐만 아니라, 그 후의 역사에까지 확대·적용되어 한국사 전개의 일반원리로서 주장되었다.

타율성론에 따르며 비주체적 역사를 가진 한민족은 불가피하게 언제나 외세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인식되어 마침내 중국·만주·몽골의 침략적 지배보다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더 낫다는 논리도 가능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타율성론은 일선동조론과 연관되며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된다.

조선 반도의 역사는 주변적임과 동시에 다린적이었고, 이 두개의 반대 작용이 혹은 동시에 혹은 단독으로 미쳐서 아주 복잡다기하게 나타났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동양사의 본류로부터 벗어나 있으면서도 항상 1개 내지는 2개의 이상의 제 세력이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2개 이상 세력의 항쟁 속에서 시달리고, 또 때로는 하나의 압도적 세력에 의해 지배되었다. - 미지나 쇼에이, <조선사개설> 중 -

타율성론과 연관된 또 다른 대표적 주장인 일본 관학자인 미지나의 ‘조선의 반도적 성격론과 사대주의론’이다. 그는 1940년에 쓴 〈조선사개설〉에서 대륙의 중심부에 가까운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한국사는 동양사의 주류에 부속된 부수성·주변성·다린성(多隣性)의 역사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한국사의 이런 성격은 대외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면에서도 나타나 사대주의라는 성격이 한국사 전개의 기본원리로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사대주의가 한국인의 의식구조·행동양식 등 일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였고, 이것이 민족성으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이다.

칠지도와 광개토대왕릉비문의 해석을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임나일본부설 등에서 비롯되는 일선동조나 타율성론에 입각한 고대사 인식은 후대의 연구에 의해 전혀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임나일본부설의 대표적 근거인 〈일본서기:니혼쇼키〉는 상당 부분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고, 일본이 고대 통일국가의 기틀을 이룩한 것은 645년 다이카 개신을 거쳐 8세기초 율령이 제정된 다이카 정권 때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수세기 전에 대규모 병력이 출병해서 한반도 남부 일대를 정복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을 보더라도 남한 내에서 일본식 유물이 거의 발굴되지 않는 반면, 일본 내에서는 삼한과 삼국계 유적과 유물이 다량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다. 정체성론

경제사를 연구하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으로 개항 당시 한국 경제가 일본 고대 말기의 촌락경제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이론이다. 즉 한국사가 왕조교체 등 제반 사회적·정치적 변동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구조에서는 아무런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으며, 특히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 필요한 봉건사회를 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국사회가 사회경제구조 발전이 전무한 정체된 사회이기 때문에 근대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은 필수적이라는 주장으로 확대되었다.

이를 가장 먼저 주장한 일제 경제사학자인 후쿠다는 러일전쟁 전 한국을 여행한 후, 한국의 근대화가 늦은 원인은 봉건제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 하면서 19세기말 조선의 사회발전단계는 일본의 10세기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이런 후쿠다의 정체성론은 이후 일본 경제사학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식민사관의 정체성론도 일제강점기 백남운의 연구와 1960년대 이후의 사회·경제 연구성과에 의해 허구임이 밝혀졌다.

즉 한국도 서양이나 일본의 봉건제와는 형태가 다르지만 그 본질이 같은 봉건사회가 존재했으며, 봉건사회 내에서도 끊임없이 사회발전과 변동이 있어 조선 후기에는 근대사회의 모태가 되는 자본주의 맹아가 형성·발전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어머 알고 보니 쯔무라상 당신 조선인 편이구먼. 그것 좀 곤란한 얘기 아네요? 차라리 아이누족 편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럴까?”
쯔무라 양행의 안주인은 실실 웃는다. 아이누족이란 일본에서 가장 이단시되고 혐오하는 일본 북방에 사는 종족이다. 서희는 그 모욕을 감내하고 앉아 있다.

-서희와 용정의 일본인 상류층 부인들의 만남 중에서, 토지 2부 3권 223쪽 -

일본에서 가장 혐오시되는 종족보다는 못한 조선인이라는 인식, 그러한 인식의 출발은 조선의 역사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것이다.

3. 우리 민족의 역사 연구

“너희들은 조선말을 썼다! 조선옷을 입고 화장까지 했다! 자습시간에 남의 방에 와서 떠들었고, 이것은 모두 교칙과 사칙이 위반이다!”

- 상의와 사카모토의 갈등, 토지 5부 4권 53페이지 -

규칙과 처벌로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는 것처럼, 일제가 식민사관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려 해도 역사의 진실은 바꿀 수가 없었다. 일제의 식민사관 대응하여 우리 역사를 지키려 노력했던 이들을 살펴 보자.

1) 민족주의 역사학

초기의 민족사학은 위대한 왕과 용맹한 장수 등의 영웅으로 역사가 발전하였다는 전근대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후 신채호가 민족을 역사 전개의 주체로 바라보는 《독사신론》을 저술하면서 하나의 역사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혁명가의 삶을 살았던 신채호는 36년 조국의 광복을 못 보고 뤼순감옥에서 순국한다.

단재 신채호는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독립운동가로서 국권을 회복하고자 모든 수단을 강구한 민족주의자로 국사 연구와 교육을 중시하였다. 논설, 시, 소설 등에서 역사가 애국심의 원천이라고 주장했고 애국심은 역사의식을 통해 고취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을지문덕, 최영, 이순신 3대 영웅전을 쓰면서 영웅이 나와서 이 나라를 구하는 데에 적극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왕과 영웅 중심 역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학을 주장하며 <독사신론>은 저술하였는데 이는 근대 민족주의 역사학의 효시로 평가된다. 또한 <조선상고사>에서는 민족정신으로 낭가사상을 제시하고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규정하였고, <조선사연구초>에서는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조선역사 1천년래 제1대 사건'이라고 평하면서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하였다.

양명학자였던 박은식은 민족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이기도 하였던 박은식은 1911년 4월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만주에서 1년간 머무르면서 고구려의 옛 유적을 돌아보고 <동명성왕실기>ㆍ<천개소문전>등을 집필하였다. 그는 1914년 상해에서 망명 이후 줄곧 집필해 오던 <한국통사> 집필을 완성하였는데, 그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한국통사>는 국내는 물론 중국, 러시아, 미주 지역의 교포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져 일제가 식민사학을 체계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하였다. 1919년 3ㆍ1운동을 경험한 박은식은 일제의 침략 과정에 저항했던 우리 민족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집필하였다.

박은식, 신채호를 통해 정립된 민족사학은 정인보, 안재홍, 문일평, 장도빈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민족주의사학은 민족을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여 민족의 우수성을 밝히고 애국심을 고취시켜 독립 운동에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민족적인 것을 강조하고 이를 밝히기 위하여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무엇'(조선심·조선의식·조선얼)을 상정하여 한국문화를 신비화·특수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2) 사회경제사학

한국 경제사학 발전에 선구자적 구실을 하였던 백남운은 해방 이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였다. 그가 도쿄상과대학에서 역사학을 배울 때 스승이 정체성론자인 후쿠다였다.

192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방법론을 한국사에 적용하였던 사회경제사학은 식민사관 중 정체성론에 대한 반박의 논리를 정립하였다.

사회경제사학은 세계사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법칙성을 한국사에 적용하여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을 규명하고 당시 식민지 지배의 본질을 밝히며 민족혁명을 전망한다는 실천적 문제의식이 이들 역사연구의 바탕이었다. 특히 정체성론을 주장하는 일본 사학자들이 한국의 역사를 중세 봉건사회가 결여된 매우 낙후된 역사발전단계로 규정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의도에 대해 한국사에도 '중세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식민사학의 문제점을 밝혀냈다.

대표적인 사회경제사학자인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한국의 역사발전을 원시씨족사회·노예경제(삼국시대)·아시아적 봉건사회(삼국시대말~조선 후기)·자본주의맹아·외래자본주의 단계로 정리했다. 사회경제사학자들은 해방 이후나 냉전논리가 강화되는 시대 상황 속에서 6·25전쟁 때까지 대부분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역사학계에서 활동하였다.

사회경제사학은 정체성론을 반박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으나, 서양 역사를 기준으로 한 이론을 우리 역사에 그대로 적용시킴으로써 민족사의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국근대사학 성립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친일파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이병도

3) 실증사학

191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에 걸쳐 일본의 동경제국대학이나 와세다대학, 경성제국대학에서 전문적인 역사교육을 받은 사학도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풍이다. 대표적인 학자는 이병도·이상백·신석호·유홍렬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랑케사학과 같은 실증사학의 영향을 받아 '역사가는 현재의 편견에서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 과거 사실을 보아야 한다'는 근대 서양역사학의 가치중립적 태도를 내세우면서 사료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배격하고 치밀한 문헌고증을 통한 개별·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의 복원에 주안점을 두었다. 따라서 이들은 민족운동의 수단으로서의 역사연구를 거부하고 '역사를 위한 역사' 즉 역사학의 전문화·과학화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역사의 연구영역과 연구방법을 확대시키고 세련화하였다.

실증사학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 것 연구'를 표방하면서 1934년 진단학회를 결성하여 〈진단학보〉를 발행했다. 특히 해방 후에는 중단되었던 학회활동을 재개하고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을 비롯한 주요대학에 자리를 잡은 후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실증사학의 '역사를 위한 역사'는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사관의 중요성과 역사학의 실천적 목표를 강조하는 민족주의 역사학이나 유물사관에 입각한 사회경제 역사학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또 일부 연구자들이 일제의 조선사편수회와 같은 기관에서 활동하고 식민사관의 주장을 따름으로써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4. 나오며

창조의 활력인 사고와 관념과 사상, 즉 혼의 산물인 유형 무형의 것들을 부수어내고 공동(空洞)을 만들기만 한다면 일본은 손 안 쓰고 코 푸는 격, 그 텅텅 비어버린 곳에다가 괴상한 현인신(現人神)이며 만세일계(萬歲一系)를 집어 넣고 꾹꾹 눌러 다져놓는다면 조선족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 송관수, 토지 5부 2권 66페이지 -

송관수의 독백처럼 일제가 식민사관을 통해 우리 민족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고 거부하고 포기하게 함으로써 그 빈 자리에 채워 넣고자 한 것은 일왕과 식민 지배에 무조건적인 복종과 순응을 바쳐야 한다는 의식이었을 것이다. 복종과 순응의 의식이 자리 잡는 순간 조선족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지금도 식민사관의 논리가 학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고,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변형된 식민사관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역사를 지켜 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이 남은 듯하다.

국교(國敎)와 국사(國史)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國魂)은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 백암 박은식 -

생각해 보기
일제 시대에 나타난 상공업상의 변화를 근거로 식민지 시기 조선이 근대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음 9강 강의는 9월 3일 오후5시 '강두메를 통해 본 사회주의적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갑천고 민찬기 교사가 강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