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배워왔던 한자공부가 평생 직업의 뿌리가 되었고 한시 연구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됐어요."

원인동에서 회춘당 한약방을 운영하는 김교희(73) 씨는 한시 연구가로 전국적인 명성이 자자하다. 30년 전인 1982년 단종문화제 한시백일장에서 차하에 입상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 씨와 한문의 인연은 초등학교 입학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가 고향인 김 씨는 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우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마을 선비들이 운영하는 서당에서 배움의 뜻을 이어갔다.

"13살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 농사를 거들면서 한문을 배웠습니다.

이웃어른들께도 배우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증조부께도 물어보며 익혔죠." 웬만한 한학서적을 자유롭게 읽기 시작하면서 16살 무렵부터는 한의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선친께서 천식이 심하셨는데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병원문턱을 넘기 어려웠습니다. 아버님의 병은 어렸을 적 홍역을 앓으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천식으로 발전한 것이었어요. 아버님 천식을 고쳐드리고 싶어 한의서를 토대로 약초를 캐다가 약을 지어드렸고 천식이 심한 겨울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농사일과 한학공부를 병행해오던 그는 군대를 제대하던 시점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군복무 중에도 한학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터라 제대하자마자 한약종상 시험에 응시했다. 한학이라면 자신있었던터라 단번에 시험을 통과했다.

"63년 무의촌 해소를 위해 각 도별로 한약종상 시험이 치러졌는데 제대할 무렵에는 강원도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었지요. 그래서 첫 발령지였던 신림면에서 20년 가까이 살았어요. 당시에는 한번 발령받은 곳을 떠날 수 없었는데 80년대 초반 거주 이전의 자유가 생기면서 원주시내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를 나오면서 보관해 오던 선조들 문집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고 체계적인 정리를 위해서는 한학을 좀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공부를 하면서 남의 도움은 받지 않았습니다. 강의록을 가지고 독학으로 문집들을 정리하고 해석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집안의 장남으로서 선조들의 문집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도 다시 한학을 공부하는데 영향을 줬습니다."

한문의 매력에 빠진 김 씨는 80년대 초반 한시 백일장에 자신의 작품을 처음 응모했다. 처음 응시한 영월단종문화제에서 상을 받고 난 뒤 자신감을 얻고 전국에서 열리는 한시 백일장은 모두 참가했다. "44살에 첫 한시 백일장에서 입선했는데 80년대 초반 제가 등장했을 때 젊은 사람이 한시에 도전한다고 유교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었죠."

30년 동안 받은 상장은 400여장. 7~8년 전 부터는 장원만 100번이 넘을 정도로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한시 연구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첫 입선한 대회에서 받은 상품이 옥편이었습니다. 이후 스텐양푼, 밥그릇, 가스렌지 등으로 부상이 바뀌었고 요즘에는 상금이 부상으로 주어지죠. 30년 동안 제가 제가 받은 부상으로도 상품의 변천사를 알 수 있어요."

한시로 이름을 날리다 보니 지역축제가 열릴 때마다 축문의뢰가 끊이질 않는다. 강원감영문화제 동악제의 축문과 영원산성 축문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고 한시를 연구하는 단체나 연구소 등에서 자문을 구하는 일도 다반사다.

"요즘은 한시 백일장에 참가하는 일보다 각종 지방 문화제 백일장에 심사위원으로 초빙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연령이 높아 젊은 사람들의 참여가 절실하죠. 한시가 어렵고 배워야할 것이 많아 젊은 친구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긴 합니다."

한시는 대련, 즉 짝을 채워 읽고 감상하는데 묘미가 있다고 한다. 한글 작품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표현이 매력이지만 자유로움 보다는 짜여진 글에서 더 많은 매력을 느낀다는 김 씨.

원주지역 한시 연구가 8명이 활동하는 금란한시회 회장직을 맡아 한달에 한번씩 작품 발표회를 갖고 품평회를 여는 등 아직도 열정적인 활동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가족은 부인 강신교(71) 씨와 2녀. 작은딸인 김현예 씨는 한국경제신문사 산업부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책읽는 CEO'를 저술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혜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