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6월 강원도 도청소재지인 춘천에서 강원도 최초의 '전국연극제'가 성대하게 개막되었다.

춘천에서 '전국연극제'가 치러지는 동안 나와 고 장상순 선배(당시 한국연극협회 원주지부장, 진광중 서무과장)는 각 도를 대표해 참가한 참가극단의 공연을 보기위해 거의 매일같이 시외버스로 춘천을 왕복했다. 당시만 해도 교통편이 꽤 불편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춘천까지 가는데만 3시간 정도였으니, 왕복 6시간을 도로사정도 변변치 않은 길을 이용하느라 저녁공연을 보고 돌아와선 녹초가 되곤 하였다.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매일 춘천으로 향했던 것은 그래도 연극이 좋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춘천에서 개최된 '전국연극제'는 도내 지역 연극협회의 경선을 거치지 않고 도청소재지에 있으니까 춘천에서 개최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은 광역시·도의 대표도시가 돌아가면서 '전국연극제'를 개최한다.

각 광역시·도의 차례는 거의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돌아온다. 가령 다음해가 강원도 차례라고 했을 때 강원도 내 개최 희망 도시의 신청을 받아(몇 개 도시에 대한 규제는 없다) 한국연극협회 강원도지회 이사 20여명의 찬반에 의해 강원도 대표도시를 결정하고 중앙에서 예비도시 한두 개 도시와 경선을 거쳐 최종 개최도시를 선정한다. 원주도 예외가 아니어서 도내에서 원주시와 태백시가 경쟁하여 원주가 도 대표도시가 되고 중앙에서는 전라도 광주시와 경쟁하여 최종적으로 2011년 제29회 '전국연극제' 개최도시로 선정된 것이다.

도내 경쟁도 치열했지만 중앙에서 전라도 광주시와 경쟁한다고 했을 때는 거의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시규모나 시세에서 광주가 월등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시세나 규모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했지만 임원진들이 "그래도 지혜와 끈기, 열의를 갖고 이 어려움을 돌파해보자"고 하는 정말 '올인'하는 자세로 임한 결과 원주개최가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강원도와 원주시 관계자, 한국연극협회 강원도지회 임원들, 원주연극협회 임원과 회원들의 노고와 성원이 같이했기 때문이다. 제29회 '전국연극제' 원주유치를 위해 노력한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1990년 '전국연극제'가 춘천에서 열리고 있을 때, 나와 장상순 지부장은 공연을 관람한 후 원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언젠가 원주에서 꼭 '전국연극제'를 개최해 보자"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당시 춘천 연극인들의 모습에서 승자의 모습, 의기양양한 모습, 그래서 조금은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던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춘천 연극인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외지에서 오는 손님을 소홀히 하든가, 무시한다든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 나이를 먹은 지금까지도 연극을 하는 친구 또는 후배들은 물론, 예술을 하는 모든 분들이 하나 같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심성의 소유자들이라고 감히 얘기하고 싶다. '예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주체인 사람들의 마음이 순수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다면 과연 그들의 창조물인 결과물이 순수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더럽고 추한 것은 듣지도 보지도 말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춘천에서 개최된 '전국연극제'에서 내가 느낀 심정은 자격지심이라고 해야 할까? 업신 여기는 것 같고 무시당하는 듯 한 인상을 받기도 했으니까. 오죽하면 그 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불현듯 내가 장상순 지부장에게 "형님! 언젠가는 우리도 원주에서 '전국연극제'를 개최하도록 합시다! 그때는 우리 춘천의 친구들에게 ×먹입시다!" 하는 소리를 했겠는가? 그때 장상순 선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래! 우리도 원주에서 '전국연극제'를 꼭 유치하도록 하자!"고 했던 기억이 새롭다.

서울의 친한 연극인들과 도내 예술인들을 만나면 "전국연극제 유치를 노래처럼 얘기하더니 정말 개최하게 되었구만!" 하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장상순 선배는 몹쓸 암으로 1994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도 열정적으로 연극운동에 참여하는 후배들과 예술인들이 있었기에 지금 '전국연극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20여년이란 세월이 꽤 긴 것 같은데 너무도 짧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전국연극제' 원주유치를 위해 노력했고 원주 연극의 대부로서 원주연극, 아니 강원연극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던 고 장상순 선배를 추상(追想)하며 찬란한 축제의 그날을 상기해 본다.

제29회 '전국연극제' 원주개최가 원주의 예술문화, 강원예술문화발전의 시금석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