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겨울 우연히 길을 지나다 보니 도로변에 양말 공장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간판을 보는 순간 문득 양로원, 고아원 이런 곳들이 생각났다. 한참을 지나치다 차를 돌려 양말 공장으로 돌아와 양말 100켤레를 작은 사이즈부터 큰 사이즈까지 고루 섞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공장에 계신분이 어디에 사용할 거냐고 되물었다. 나는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인데 내 어릴적 생각이 나 어디 좀 전할까 한다고 답했더니 그분 말씀이 공장에선 개인에게 판매를 하지 않지만 좋은일 하시겠다니 조금 싸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포장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양말을 받아들고 보잘 것 없는 작은 것을 들고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을 하다 이내 괜한 짓을 하였구나 하고 후회를 하였다. 그러다 며칠 후 12월 23일 태장동을 지나다 '원주신애원'이라는 작은 표시판을 보고 용기를 내 들어가 원장님을 찾았다. 나는 짧게 소개를 하고 쑥스러웠지만 "양말 몇 켤레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며 양말을 건넸더니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원장님께서는 나눔이란 크고 작음도 아니요 많고 화려한 것도 아닌 오직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말씀해 주셔서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봉사라는 참뜻을 일러주신 분이 바로 지금 원주아동센터 뒷편에 자리잡은 원주재가복지센터 원장님이신 진일균 원장님이시고, 또 다른 한 분은 지금 원주 예찬어린이집 문미화 원장님이시다.

이 두 분께서 나에게 어두운 곳을 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눈을 하나 더 주셨다. 이분들께 아무런 보답도 하지 못하고 있기에 마음은 항상 죄송하고 미안할 뿐이다. 그 후 나는 원장님 말씀대로 마음만으로 봉사라는 일을 해보자고 혼자 다짐하고 어설프게나마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하나의 작은 씨앗이지만 크게 욕심 부리지 말고 열심히 뿌리고 가꾸면서 주위의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말고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보자고 다짐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급식비를 내지 못해 점심을 못 먹고 수돗물로 허기를 채우는 학생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요즘도 이런 어린이가 있을까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전 나 또한 어린시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단 한번도 점심을 먹어 본 적이 없었기에 가슴 한 구석이 짠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단계동주민센터에 근무하던 박명순 씨의 도움으로 우리 주변에 어려운 이들의 실상을 알게 됐다. 박명순 씨는 후견자 분들이 많이 동참해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친절하게 일러주시면서 몇 명의 학생을 추천해주셨다. 그때부터 나의 작은 사랑이 어린 아이들에게 전해져 먼 훗날 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만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눔이란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하고 여겨왔던 나는 나눔을 몸소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큰 것이 아니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음을 배웠고 용기내어 봉사라는 참된 즐거움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었다. 물론 나눔이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 작은 마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가.

그 후로 주위를 돌아보니 연탄봉사에서부터 소년소녀 가장돕기, 독거노인 보살피기 등 너무나 할 일이 많았고 그것을 해냈다. 이 곳 저 곳을 다녀오다 보면 즐거운 마음으로 귀가할 때가 별로 없었다. 앞 못 보는 이에게는 눈이 되어주고 지체장애자에게는 손과 발이 되어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족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소망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봉사의 길을 함께 가면서 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함께 나누게 되길 희망한다. 앞으로 나의 육신이 허락하는 날까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까지 주어진 시간들을 내 이웃을 위해 그리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