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는 경인년을 잘 마무리하고 신묘년 새해를 맞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은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작년과 올 초 벌어진 일들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재작년 필자도 함께 진행했던 문화재단추진위원회의 일이다.

전임시장이 나름 의지를 보여준 결과로 쉽지는 않았지만 문화재단이사 추천, 심의까지 일이 진척 되었다. 그런데 재단이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일반기업체의 참가부분도 배려하자는 문제가 나타났다. 선뜻 기업체의 영역에 대해 동의하기가 어려웠으나 공개추천을 하는 것이니 누가 추천되든 추천자격만 되면 문제가 될 일은 아니라 생각하며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추천이사들에 대한 선정결과, 학계나 언론계보다 기업의 관계자들이 재단이사로 결정(물론 공정한 선정을 위해 여러 심사항목에 배점을 표하는 방식으로 택했다. 이 심사항목과 배점에 문제를 제기한 추진위원 두 분은 그 자리에서 사퇴를 하였다.)되고 난 후 필자는 자괴감이 들었다.

기업들은 시장에서 벌어들인 잉여이윤을, 순수하게 표현한다면 사회환원이지만 다르게 보면 그들 기업의 설립정신을 표방하고 이미지 제고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재단을 구성하고 사회기여를 한다. 기업체 이름이 붙거나 지원하는 장학재단이나 문화재단, 학교재단이 그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시·도의 문화재단은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다.

애초 자본이나 기업 이윤이 개입되는 영역이 아니다. 만약 경제적 지원의 논리로 재단에 기업들이 참여하게 된다면 그 문화재단이 과연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을까? 경제적 논리에 문화예술계가 백기투항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무척 당황하였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이후 재단구성은 원주시가 독단적으로 취한 몇 가지 어그러진 일들과 겹치면서 흐지부지되고 재구성에 이르게 된다.

지난 6월 지방선거로 선출된 신임시장이 추진하는 문화재단도 그리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상임이사를 별도로 선정하지 않고 원주시 담당국장이 대신하는 것은 지금 인천문화재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무원 재단개입건과 유사한데 지역 예술인들조차 잘 모르고 축하받지 못하는 현판식도 인천 재단이사장 선정과정과 유사하다.

궁금한 건 다른 영역의 민관협력기구에서도 이렇게 해당주체들의 입장이나 역량은 생각지 않고 담당공무원들이 상임이사를 맡는지 의아스럽다. 지금까지 관에서 해왔던 일을 민간에게 역할을 줌으로 좀 더 전문적이고 역동적인 일들을 하기 위해 구성하는 문화재단이 원주시의 공무원을 중요직책에 앉히기 위해 만들어진다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시적 조치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어거지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지역 문화예술계는 그 살림이 어렵다. 하지만 반세기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작가들 자신의 어려운 살림을 쪼개 공연이나 전시활동을 벌이면서 끌고 왔다. 다양한 연령층에 많은 분들이, 심지어는 건강이 나빠도 창작에 대한 욕구로 어렵게 전시회를 개최하는 원로예술인들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문화재단은 그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지역문화예술계에 대한 배려도 아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재단이사회에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대표들과 전문가도 함께 있기 때문에 이런 일련의 일들이 행정부의 잘못만으로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원칙에 입각해서 무엇 때문에 문화재단을 만들고자 하는지 생각하고, 지역 예술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조금 천천히 간다면 그게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