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대통령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숙명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분이다. 하지만 신생 국가의 가난한 외교관으로 한국 외교의 초석을 다지며 후배 외교관들에게 사표가 됐고, 공직자로서 현장행정의 모범을 보였으며,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청렴한 삶을 살았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공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정국을 침착하게 이끈 것은 당시 위기에 처한 국가 상황을 고려했을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공로다.

대통령에 선출된 후 비운의 국가운명과 함께 뜻을 펼칠 기회를 잃었지만, 최 대통령은 서거하는 그날까지 국가원로로서 모범을 보였다. 올해 서교동 자택 공개와 함께 새로 조명된 그의 청렴한 삶은 많은 시민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왔으며, 자신의 월급을 쪼개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도 이를 부끄러워한 일은 그의 성품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특히 국무총리 시절 장성탄광 막장에 들어가 광부들과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은 그의 성품이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최 대통령은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노고를 잊지 않기 위해 평생 연탄을 때겠다고 광부들과 약속했고, 이를 죽는 날까지 지켰다.

우직하고 검소하며, 화려한 수식보다는 소박한 본질에 더 가치를 두는 최규하 대통령은 영락없는 강원도 사람이며 원주인이다. 그는 우리 원주가 배출한 가장 훌륭한 인물이다. 그런 분을 우리는 너무 소홀히 모시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고장이 배출한 인물은 그 고장의 자부심이자 새로 자라날 인재들에게는 표상이 된다.

그래서 이웃나라들은 대통령부터 소시민까지 국가를 위해 조금이라도 공헌한 인물이 있으면 찾아내어 기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통령 기념사업조차 국가 예산을 끌어내는 것은 물론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규하 대통령 기념사업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기념사업 가운데서도 가장 진전이 없는 사업이다. 2010년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 관련 예산은 120억 원인데, 이중 유일하게 최규하 대통령 기념사업에만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 않다.

반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관련 예산은 약 70억 원 정도로, 총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묘역 조성에 20억 원이 책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시절의 업적 말고 과거 민주투사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자료 수집에만도 15억 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움을 안고 있는 최규하 대통령 기념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것은 원주인의 관심과 호응 뿐이다. 작은 움직임이 모여 커다란 국가사업의 초석이 된다. 원주가 낳은 인재 최규하 전 대통령은 원주에서, 또 대한민국에서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후대에 온전히 물려줘야 할 현대사의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