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종이가 깔린 드립퍼 속 원두커피에 끓인 물을 살살 돌리며 따르는 김필호 대표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커피 전문점 전성시대라고 할 만큼 수 많은 커피 전문점이 생기고 있는 요즘, 드립 커피보다는 고가의 머신기를 이용해 커피를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눈으로 보기에도 근사하고 수증기를 뿜으면서 나오는 커피 향이 진하기 때문에 커피점 운영을 계획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머신 커피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 '바흐'에선 커피 머신을 사용하는 날이 많지 않다.

여러개의 드립 용기 앞에 선 김 대표는 작품을 만들듯이 손을 움직인다. 커피를 내리는 그 순간이 김 대표는 가장 행복해 보인다. 풀릴 기세 없이 덤벼든 추위를 헤집고 들어선 바흐. 에디오피아 예가체프 한 잔과 달콤한 초콜릿 두 조각으로 몸을 녹이며 수줍음 많고 말 수 적은 김 대표의 커피 얘기를 들었다.

"커피 맛을 좌우하는 첫번째 조건은 좋은 커피"라며 "로스팅한지 오래 된 커피에선 탄냄새나 짠내, 텁텁한 느낌이 든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김 대표가 건네 준 볶은 커피콩에서는 달작지근한 향이 신선하게 전해졌다. 언젠가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탄내는 뭘까? 콩을 태워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래된 커피에서 나는 냄새였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볶은 커피 콩을 구별해서 담아 놓는다. 신선한 커피는 투명한 유리병에 보관해 사용하고, 상태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커피 콩은 봉지에 모았다가 버린다. 버리기 위해 담아 놓은 커피에서 예전에 마셨던 그 탄내와 짠내가 섞여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소한 것 같은 원칙들을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김 대표에게서 진한 커피 향이 난다. 그러다 보니 바흐는 드립 커피의 제 맛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단골이다.

김 대표가 커피와 인연을 맺은 것은 레코드 가게를 하던 시절부터이다. 레코드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즐겁게 커피를 권했고, 신화라인이라는 음악다방으로 업종을 변경하면서 조금 더 커피와 친밀해졌다. 그리고 5년전 하얏트뷔페 근처에 커피 전문점을 오픈했다가 관설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대표는 커피를 술에 비유했다. 연한 커피는 소주, 진한 커피는 양주, 입안에서 맛이 느껴지는 커피는 막걸리로 표현했다. 그래서 처음 이곳을 방문해 커피를 고를 때는 소주에 비유한 연한 맛은 콜롬비아, 에디오피아 예가체프를, 진한 양주와 같은 커피는 케냐AA,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막걸리 같은 커피는 인도네시아 만데린과 과테말라안티구아 중 선택하면 된다.

'바흐'는 독일어로 흐르는 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커피 칸타타라는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서 바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피향과 함께 음악의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그윽한 드립커피를 마시며 누군가와 만남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 순간에 이곳 바흐를 찾으면 된다.

영업시간은 오전11시부터 자정까지. 한국가스공사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문의: 766-0735(바흐)

임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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