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나 역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잘 알지 못했을 혹은 막연하게 짐작했을 사실들을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비록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음식도 다르며 성장 배경도 상이하지만, 어떤 상황을 바라보는 인지 능력과 감정,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발전하는 것 등 본질적인 면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친구들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속을 터놓고 친해지며, 나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적대적인 감정을 갖는다. 일만 하고 임금만 받아가는 기계나 로봇이 아니라 나와 우리와 똑같은 의식과 감정을 가지고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2007년으로 기억되는 어느 여름날 평소 친분 있게 지내고 있던 파키스탄 친구를 통해 대구에서 일했던 다른 파키스탄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인데 친구들을 통해 '함께하는 공동체'와 내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귀국하기 전에 나를 꼭 만나고 싶어 해서 만나게 되었다.

더운 여름 냄새나는 사료공장 한편에 마련된 원주 어느 외국인 노동자 숙소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얼핏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공장에서 일하다가 오른쪽 어깨 아래가 절단된 모습은 충격까지는 아니라도 놀라움을 안겨 주기에는 충분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시작된 식사시간에 다른 친구들은 모두 오른손을 써서 식사를 하지만 그 친구 혼자 어색한 왼손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왼손은 식사 시 사용할 수 없는 금기였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후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데 딱히 해 줄 이야기가 없었던 나로서는 팔을 잃어버린 것이 인생 전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니까 힘을 내라고 말해주었다. 어색한 시간들이 흐르고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어느 아침 7시 정도에 일상을 깨우는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의 주인공은 바로 그 파키스탄 친구였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나면서 당신이 생각나서 전화한다고, 기회가 되면 꼭 파키스탄에 와서 자신과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통화하고 그 친구는 자기 나라로 떠나 버렸다.

통화를 마친 후 별다른 도움도 주지 못한 내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그 친구는 마지막 통화를 나와 하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기대했던 것은 그저 인간이 인간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상할 수 없는 인생의 불행을 만나면 특별한 대책이 아니어도 그 아픔을 함께 해 줄 누군가를 기대하는 우리처럼 그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말 한 마디에 위로 받고, 말 한 마디에 상처 입는 이웃이 우리 옆에 함께하고 있다.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