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을 교단에서 보냈다. 그것도 농업학교에서 동물자원을 가르치며 학생들과 함께했다. 교육자로서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교장 지위에 있으니 겉으로 보기엔 그나마 성공한 듯한데 "행복한 제자들을 얼마나 길러 냈는가?" 하고 스스로 묻는다면 고개가 숙여진다. 난 영서고등학교 교장이 되기 전 수 년 간 영서고 교감으로 제직했다.

그때 이승영 선생님이 이끌고 있던 50여명의 매지농악전수반을 처음 보게 되었고 활력이 넘치는 농악동아리가 전국을 휩쓸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어깨가 처지고 고개를 숙인 학생들이 농악을 할 때만큼은 속된 말로 방방 뜨는 것이었다. 녀석들의 신명을 보노라면 나 역시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리곤 했다. 학생들이 행복하고 학교가 즐거우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2004년도 강원도 최초로 전주대사습대회에서 장원을 하였고, 일본과 중국과도 자매결연을 맺어 문화교류를 하고 원주따뚜, 강원감영제 등에 취고수악대를 시연하기도 했으며 농민의 날에 농민과 어울 마당을 잘 이끌어 가는 지역최고의 동아리가 되었다.

더구나 올해는 우리학교 역사상 전례가 없던 서울에서 열린 제19회 전국전통문화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영광까지 누리게 됐다. 교장으로서는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운 동아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그 빛나는 업적보다도 그 뒤에 숨어있는 작은 변화들이 훨씬 소중하고 아름답다. 우리학교는 원주시 관내에서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낮다.

그러나 우리 교육자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한다. 그러니 행복지수로 본다면 결코 우리학교가 낮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학교 농악동아리다. 녀석들이 아침연습을 마치고 힘 빠진 모습으로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가관이다. 헌데 농악연습실로 가는 모습은 활기에 넘치고 웃고 떠든다. 녀석들이 행복해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이 행복하다는 건 참 중요하다. 농악반 학생들이 휴일에도 연습하러 나온다는 것은 녀석들은 행복을 찾아오는 것일 터이다.

나는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꿈·희망·비전있는 명품학교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남들이 알아주는 품질이 명품이겠지만 그보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는 물건이 명품 아닐까? 학생들 스스로 학교가 좋고 행복한 그 무엇이 있다면 바로 그 학교가 명품일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지옥으로 느낀다면 그 학교는 명품이 아니다. 소위 명문 고등학교의 학업성취가 높은 학생들이 자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교육의 잘못이 큰 것이다.

학교는 교육 현장이다. 교육이라 함은 단순한 지식전달은 결코 아니다. 행복한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울대 교수가 지식이 모자라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가 명품 학교의 시작인 것이다. 요리명품학생, 농악명품학생, 영농명품학생, 컴퓨터명품학생, 기능명품학생, 인성명품학생, 특기명품학생, 효행명품학생 등 다양한 범위와 종류가 있다.

얼마 전 중국연태고급직업학교에서 공연했을 때 학생들과 모든 교직원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면서 우리 농악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실감했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고 돌아왔다.

나는 대통령상보다도 학생들 마음에 작은 변화의 불씨를 지피는 소중한 변화가 더 좋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학업성취도와 함께 동아리활동 내용을 대학입시와 취업에 중요한 측정 요소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성적일변도의 평가에 매달리는 사회풍조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지역사회는 학생들이 만든 건강한 동아리가 활발하게 활동 할 수 있는 장소와 예산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폭넓은 활동 무대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학생들이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기회가 될것이다.

이제 정말 "성적만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 라는 거짓 없는 진실을 우리 학생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