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진료실에서 노인 환자들을 많이 만난다. 노인 환자라고 하면 흔히 치매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가장 많다. 노인 우울증 원인으로는 생활고, 신체적인 질병, 배우자나 지인들의 사망으로 인한 외로움 등이 있겠으나 사회적인 측면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급격한 산업화와 가족의 붕괴 등이 이루어지면서 노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노인 우울증 환자들을 보면 스스로 이제는 살 만한 가치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자식들에게 더 이상 도움이 안되고 부담만 주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스스로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우울해 지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노인들의 태도는 그 동안 자신들 인생의 가치, 즐거움을 외면한 체 자식들의 인생을 위해 올인했던 것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제 할 일을 다 했으니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의 실제적인 가치를 한 번 자세히 따져보자. 우리나라 노인들은 정말 부지런하다.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기 전까지 그냥 놀기만 하는 노인들이 몇이나 되는가? 노인들은 육체적으로 나약한가? 힘들다고 젊은이들이 다 기피하는 농사나 노동을 현재 대부분 노인들이 떠맡고 있다. 젊은 엄마들이 한 둘 밖에 안되는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푸념하지만 많은 노인들이 하루종일 손주들을 돌보아주고 있다.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가? 사고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신중하므로 오히려 실수 가능성이 낮다. 노인들은 그야말로 근면성실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으며 평생을 살아왔으며 현재에도 그렇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덕목을 평생 실천하며 살아온 분들이다. 노인들에게 경제력이 부족한가? 많은 자식들이 여전히 부모님의 경제력과 재산에 의지하고 목매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노인들에게 부족한 것이 딱 하나 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다. 이 나라와 사회를 이 만큼 키워냈다는 자신감, 아직도 훌륭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보람있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가 가지고 있는 돈과 재산을 나 자신 또는 사회를 위해 충분히 쓸 수 있으니 너희 젊은이들이 어디 이 만큼이라도 할 수 있느냐 라고 하는 자신감이 오히려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일궈놓은 가치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또 분발해야 한다.